북가주는 안개와 레드우드의 낙원이다. 저녁 무렵 샌프란시스코 트윈 픽을 넘어 폭포처럼 쏟아지는 안개비에 흠뻑 젖으면 내가 왜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지 안다. 금문교의 두 첨탑이 안개의 베일에 휘감겨 둥둥 구름기둥처럼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내가 왜 이 도시 곁에 살아도 그리워하는지 안다.
해리 길리암이란 향토작가는 이곳 안개를 오래 관찰한 여러 편의 글을 썼다. 샌프란시스코 안개가 유독 몽환적인 건 상상력을 일깨우는 안개모양과 주변풍치와의 절묘한 조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다.
알카트라즈 섬 위에 솟은 안개의 성(城). 금문교에 걸린 무지개 운무의 아취, 소솔리토 언덕을 흘러내리는 안개 폭포, 캔들 스틱 공원 쪽으로 급류처럼 흘러가는 안개의 강. 그리고 베이를 가로질러 버클리 대안으로 항진하는 안개 선단(船團).
금문교 너머 뮈어 레드우드 숲도 장관이다. 레드우드 앞에 서면 신의 총애를 받는 나무의 기가 전해져온다. 이 세상 어느 나무보다 크고, 수려하고, 우람하고, 오래 산다. 100m이상 수직으로 뻗은 키는 하늘에 가장 가깝고 1~2,000년을 넘게 산다.
나무속엔 천연방부제인 탄닌산이 듬뿍 들어있어 죽어도 썩지 않는다. 해충이나 곰팡이들이 얼씬 못한다. 나무껍질에 송진 같은 수지가 없는데도 삼나무 섬유질이 두터워 웬만한 산불은 뚫지도 못한다. 보통나무들은 모세관 표면장력으로 수분을 나르지만 이를 능가하는 삼투력으로 대기압을 이기고 뿌리의 물을 100m 꼭대기까지 올려 잎을 푸르게 한다.
1억년전 레드우드 숲은 캘리포니아 연안을 뒤덮었고 그 사이로 공룡들이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레드우드 숲이 유독 캘리포니아연안에 울창했던 이유가 안개 때문임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둘은 공생한다.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우기만 지나면 건조기로 들어가는 캘리포니아에 안개는 중요한 수원(水原)이다.
북가주의 여름엔 찬 태평양 해류와 뜨거운 대지의 온도차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안개는 새벽마다 레드우드 숲에 스며들어 갈증을 풀어준다. 레드우드는 안개의 물을 받아 씨 발아보다는 뿌리발아법을 터득해 왔다. 어미나무는 물이 부족한 숲에서 어린 묘목을 자기 뿌리에서 직접 키워내는 것이다. 자식들이 충분히 크면 영양을 다 빨린 어미나무는 수를 다하고 죽는다. 레드우드 나무 가족들이 빙 둘러선 그로브 한가운데 텅 빈자리는 신의 품성을 닮은 어미나무의 희생의 흔적이다.
그런데 지구기후의 변화로 북가주 안개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지난 110년간의 기상기록을 관찰한 버클리 대학 연구진의 발표가 충격적이다. 북가주 여름 안개 발생 빈도수가 33%나 줄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50년 간 여름 안개가 낀 날이 90%에서 50%로 급격히 줄어든 통계도 제시했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태평양과 내륙지방의 기온 차가 줄어든 탓이란 추론이다.
1850년대만 해도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숲은 200만 에이커에 달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벌목과 개발로 지금은 10만 에이커 정도 남았다. 겨우 5% 남짓이다. 이제 안개마저 스러져버리면 젖줄을 잃은 레드우드 숲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새벽안개 자욱한 레드우드 숲에 가고 싶다. 잘 익은 흙냄새, 촉촉한 이끼 내, 삼나무 향이 향불 내음처럼 배어있는 그 숲에 머물고 싶다. 그 속에서 바람에 묻어오는 나무가족들의 따뜻한 숨소리를 듣고 싶다. 그리고 안개의 사랑을 잃어가는 레드우드 숲의 신음에도 귀 기울이고 싶다.
김희봉 / 환경 엔지니어·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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