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장 뒤투아가 이끈 LA필 ‘로미오와 줄리엣’
샤를 뒤투아(74)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런던 로열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이며 현존하는 위대한 마에스트로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스위스 태생인 그는 프랑스 국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1991~2001), NHK 교향악단 상임지휘자(1996~2003), 캐나다 몬트리올 심포니 음악감독(1977~2002)으로 활약하면서 평범한 오케스트라를 정상급 연주단체로 바꿔놓는 ‘오케스트라 명조련사’로 이름을 알려왔다. 해외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여러 차례 내한 공연을 펼쳤고, 특히 2009년과 2010년 한국의 신예 연주자들로 꾸며진 ‘린덴바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함으로써 한국 음악팬들에게 친숙한 지휘자이기도 하다.
공연 리뷰
샤를 뒤투아가 지난 22, 23, 24일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LA 필하모닉 객원지휘로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주했다. 그의 명성 때문에 연주장을 찾긴 했지만 고령이라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사실 작년에 있었던 로린 마젤 연주회는 좀 실망스러웠다), 뒤투아는 참으로 힘차고 아름다운 연주를 펼쳐보였다. 프랑스와 러시아 음악에 조예가 깊은 뒤투아는 낭만주의 음악의 절정인 베를리오즈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 감성으로 명쾌하고 강렬하고 세련되게 풀어나갔다. 노장의 지휘봉 아래 LA필은 더 절제되고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사랑의 노래들을 연주했고, 내레이터의 역할을 하는 LA 매스터코랄과 3명의 솔로이스트(메조소프라노 로렌 맥니즈, 테너 장 폴 푸셰쿠르, 베이스 바리톤 조나단 레말루)들은 때론 즐겁게, 때론 격렬하게, 때론 슬프고 비통하게 아름다운 합창곡과 아리아로 이 비극의 음악을 노래했다.
LA타임스의 마크 스웨드 비평가는 이 날의 연주회를 바로 그 전 주말에 있었던 구스타보 두다멜 지휘의 메시앙 ‘투랑갈릴라’ 연주와 비교하는 흥미로운 평을 썼다. ‘로미오와 줄리엣’(1839작)과 ‘투랑갈릴라’(1948작)는 모두 프랑스 작곡가의 심포니이고, 둘 다 인터미션 없이 10개의 악장(혹은 부분)으로 나눠진 작품이며, ‘투랑갈릴라’는 메시앙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신화를 바탕으로 쓴 사랑의 노래, ‘로미오와 줄리엣’은 베를리오즈가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다가 오필리아 역을 맡은 여배우에게 빠져서 쓴 사랑의 노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두 연주회를 모두 관람했는데 두 지휘자와 LA필의 연주 자체는 각자의 스타일대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것이었으나 한 시간 반동안 프랑스 음악이 내뿜는 풍만한 서정과 감상에 빠져 있는 것은 달콤한 초컬릿과 아이스크림을 너무 포식한 것 같은 즐거움과 동시에 혼곤한 피로 역시 몰려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하게 느껴진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구성으로, 4악장 교향곡이 교과서 같았던 시대에 10부 교향곡을 만들어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적절히 섞고 3인의 솔로가 각기 한 차례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악을 만들어낸 베를리오즈의 창의력이다. 음악과 이야기의 흐름이 아름답게 조화돼 마치 한편의 오페라 혹은 서사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연말까지 디즈니 홀에서 열리는 가볼 만한 연주회는 ▲10월29~31일: 최근 지휘자로 데뷔한 피아니스트 크리스천 자카리아스(Christian Zacharias)가 피아노도 치고 LA필을 지휘하며 모차르트, 바흐, 베토벤을 연주한다. ▲11월19~21일: LA 필 계관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Esa Pekka Salonen)이 린드버그의 ‘그래피티’를 미국 초연하고 바르톡 오페라 ‘푸른수염 영주의 성’을 지휘한다. 살로넨은 다음 주말인 11월26~28일 힌데미스와 바그너의 곡도 연주한다. ▲12월10~12일: 바이얼리니스트 힐러리 한(Hilary Hahn)이 차이코프스키 바이얼린 협주곡을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지휘로 협연한다. 이외에도 여러 유수 지휘자들이 LA필을 객원 지휘하는 프로그램과 실내악 연주회들, 합창, 오르간, 싱얼롱, 크리스마스와 뉴이어스 이브 연주회까지 다양한 콘서트가 매일 열리고 있다.
www.laphil.com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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