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크로체 교회를 떠나는 순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고 걷는 동안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프랑스의 문호 스탕달은 그의 책 ‘나폴리와 피렌체-밀라노에서 레조까지의 여행’에서 르네상스 대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피렌체에서의 경험을 이렇게 토로했으며 이후 걸작 미술품을 보고 갑자기 흥분상태에 빠지거나 호흡 곤란, 우울증, 현기증 등의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을 ‘스탕달 신드롬’이란 병리현상으로 부른다. 반 고흐 역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개관하던 해 이곳의 걸작들을 보려고 친구와 함께 미술관을 둘러보다가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를 보는 순간 감동과 충격으로 도저히 다른 작품을 볼 수 없었다 한다.
이렇듯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존재 자체가 감명을 주는 형식, 이것이 예술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러한 존재론적 충격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긴 시간 줄을 서고, 루브르박물관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드디어 그 원본 작품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 유일무이한 현존성에서 아우라적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기술혁명 이후 이렇듯 전통적 예술작품이 갖고 있었던 유일성과 진품성을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 변혁이 일어나게 되고, 현대사회의 예술은 생산방식의 변화에 따라 그 틀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술복제 특히 사진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세상에는 수많은 모나리자와 수많은 고흐가 컵받침으로, 식탁보로, 달력으로 인쇄되어 넘쳐나게 되었으며 1년 내내 달력 속의 모나리자를 본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아우라적 체험을 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아우라의 상실’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기계 복제되어 예술과 일상사물, 특별함과 사소함의 경계가 무너지고 동일화된 이 시대를 아주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예술화한 사람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앤디 워홀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기계라고 생각한다”라는 것을 자신의 모토로 삼고 실제 작업에 있어서도 켐벨 깡통, 코카콜라 병, 마릴린 몬로,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의 이미지를 기계가 하듯 메마른 반복을 통해 늘어놓는 작품들을 제작, 우리가 살고 있는 기계공업시대의 비개성적·
도시적인 태도를 추구한 그는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유닉함이 생명이다 라는 전통적인 믿음을 깨고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이 가져온 새로운 사물들의 세계를 추구하려 했다.
공연 현장에서 직접 노래와 연주를 듣기 전 이미 CD로 익숙해지고 파리에 가보기도 전에 수없이 많은 에펠탑 이미지로 무장되고, 사랑마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미리 가상 체험하는 우리 시대는 가슴 뒤흔드는 첫 만남의 순간들을 미디어들에게 내어주고 통조림된 음식처럼 박제된 체험으로 우리의 삶을 시들하게 만든다.
워홀의 위대함은 우리가 리얼이라고 부르는 것, 알고 있고 체험했다고 착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어 들어온 정보들로 구성되어 채워져 있는 가상현실이라는 현대 상황들을 작품을 통해 나름대로 직관을 갖고 증언을 한 것이다.
우리의 온몸으로 흘러 들어와 핏줄을 타고 흐르면서 단숨에 심장박동이 팽팽하게 당겨 일으켜지는 그 생생한 체험을 잃어버리게 하는 잔인한 디지털 시대 속에서 우리의 생생한 감각을 지켜내는 길은 직접 경험하고 소유하고 만지는 아날로그 식 체험을 지니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하고 이별하고 비를 맞고 고통을 겪고… “전지현보다 여자 친구가 좋은 이유는 만질 수 있어서다”라는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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