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연 리뷰 / 주빈 메타 지휘 이스라엘 필하모닉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하모닉을 지휘하고 있다.
반항·우수·고뇌·절망 속
방황하는 인간 내면 그려
가슴 두드리는 트럼핏 소리
듣는 사람 무장해제 시켜
3월1일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주빈 메타 지휘의 이스라엘 필하모닉 콘서트에 갔었다. 75세의 거장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지만, 이날 음악회가 날 부른 것은 말러 교향곡 5번이었다.
구스타브 말러가 1901년에 작곡한 5번은 반항과 우수, 체념과 정화, 고뇌와 절망 속에 방황하는 인간 내면이 그려져 있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곡이다. 특히 제4악장(아다지에토)이 영화 ‘베니스의 죽음’(비스콘티 감독·1971)에 삽입돼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말러 교향곡 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되었다. 현악기와 하프로만 연주되는 이 악장은 어찌나 애절하고 비감미 넘치는지 1968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장례식에서도 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4악장뿐만 아니라 금관과 현악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삶과 죽음, 이성과 감성, 사랑과 실연을 애잔하게 노래하는 1악장도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특별히 첫 소절부터 울려퍼지는 트럼핏 소리는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두드리며 듣는 사람을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지극한 ‘미’는 슬픔과 통한다는,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아프고, 너무 슬퍼서 감성과 감상과 감정이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도록 휘젓는 음악이다.
말러 교향곡 연주는 전통적으로 카라얀의 것이 유명한데 번스타인 역시 자기가 말러의 환생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를 사랑했으며, 구스타보 두다멜도 ‘말러 맨’이고, 정명훈 역시 말러를 지휘하기 위하여 지휘를 시작했다고 한 적이 있을 만큼 말러의 교향곡들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깊이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정명훈 지휘의 서울시향은 작년 9월 말러 교향곡 전곡연주 사이클을 시작해 올해까지 10곡을 완주할 예정이고, 구스타보 두다멜은 다음 시즌 내년 1월과 2월에 LA필하모닉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를 지휘하며 말러 9개 교향곡을 모두 연주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론 카라얀이 연주하는 말러 5번이 제일 좋은데 이날 주빈 메타의 이스라엘 필 연주도 무척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베를린 필과 같은 극도로 절제된 세련미는 없었지만 개인기가 뛰어난 단원들이 생생하고 절절하게 말러의 음악을 재연해냈다.
한편 이날 음악회는 연주장 밖에서는 이스라엘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안에서는 유대인들의 극렬한 애국심을 가까이서 지켜본 매우 특별한 콘서트였다.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중동정책과 인종차별을 타도하며 디즈니홀 입구를 맴돌았고, 연주장 안은 있는 대로 차려 입고 곱게 꾸민 유대인 노인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채웠다. 이들은 심지어 연주 시작 전 단원들이 한 두명 들어오기 시작할 때부터 박수를 치더니 주빈 메타가 등장하자 초판부터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연주가 끝나고 났을 때 얼마나 야단법석이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이들은 끝없이 앙코르를 제창했으나 75세 노령의 메타는 수차례 인사만 공손하게 한 후 포디움을 떠났다. 한편 과거 LA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1962~1978)였으며 이스라엘 필의 종신 음악감독인 그는 바로 이날 낮에 할리웃 명성의 거리(Hollywood Walk of Fame)에 2,434번째 별을 새겼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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