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 대지진 참사가 수주일이 지났는데도 소식은 암울하기만 하다. 인류 역사상 4번 밖에 없었다는 진도 9.0의 초강진과 함께 후쿠시마 원전 폭발까지 겹쳐 핵공포가 일본열도를 덮치고 있다.
참사의 중심부, 미야기현 게센누마시의 옛 중심 사거리에는 쓰레기 늪 속에 쓰나미에 휩쓸려온 대형화물선 한 척이 유령처럼 덩그러니 떠 있다. 그 기막힌 신문 사진 옆엔 “도시와 주민 모두가 사라졌다“라는 검은 활자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게다가 TV 화면엔 연기를 내뿜으며 연신 타들어가고 있는 원전이 불붙은 화약고처럼 보인다. 곧 핵 연료봉이 노출되고, 노심이 녹아 방사성의 대량누출로 치닫는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꼭 2년 전 이맘때쯤 나는 그곳에 있었다. 모처럼 아내와 한국방문 중에 난생처음 일본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 때 첫 기착지가 센다이였다. 옛날 내 아버지가 지금 내 아들보다 젊었을 때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 유학하던 그 땅이었다. 이젠 육십갑자(甲子)가 돌아 내가 내 아버지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그곳을 찾은 셈이었다. 세상의 인연은 돌고 돈다는 감회를 안고 떠난 여행이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일본 열도는 거대한 수목원 같았다. 특히 도호쿠 지방으로 올수록 초록빛이 짙어 보였다. 그 중심부에 있는 센다이는 일본의 전형적인 바닷가 전원도시였다. 하늘은 바다같이 맑고 삼나무 방풍 숲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은 따스했다. 센다이는 신선들이 놀던 곳이란 말을 그 앞바다에 떠있는 마쓰시마를 보고 실감했다.
마쓰시마는 230여개나 되는 작은 섬들로 구성된 일본 3경의 하나라고 했다. 히로시마의 이쓰쿠시마, 교토의 아마노하시다데와 함께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상을 떠올리던 곳. 우리는 어선 같은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갔다.
사토질로 형성된 손바닥만 한 섬들은 오랜 바람에 시달려 기기묘묘한 형태로 자태를 뽐냈다. 세 아치 교각위에 뜬 섬 안에 작은 절과 소나무가 자라고, 배 돛 같은 바위에 갈매기가 앉아있는 형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도 남아있는 선명한 기억은 내 머리 바로 위에서 시종 나를 따라 날던 갈매기 한 마리였다.
그 때는 갈매기가 먹이를 원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영물이 무언가 내게 귓속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가하고 느껴지는 것이다.
폐허더미에 삐죽 나온 노모의 싸늘한 손을 잡고 울음을 참는 여인의 사진을 보며, 그 때 센다이에서 만났던 기념품가게 기모노 중년부인의 화사한 웃음을 떠올린다. 물 한 병과 주먹밥으로 연명하는 노인의 영상을 보며, 그때 센다이 린노지 사찰 식당에서 우리에게 따뜻한 우동을 정갈한 그릇에 담아 내오던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생각난다. 아마도 마쓰시마의 절경과 함께 이젠 모두 쓰나미에 쓸려갔으리라는 생각에 망연해 진다. 세상 인연이 이렇게 거꾸로 돌 수도 있을까.
지진이 나던 날, 센다이 앞바다에 떠 있던 유람선이 쓰나미에 휩쓸려 100여명 선객들과 함께 사라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우리가 탓을 수도 있었으리라는 막연한 절망감으로 그 때 우리를 실어주었던 배의 사공을 생각했다. 유쾌하고 건장한 50대 어부였다.
그런데 다음날 새로운 기사가 났다. 쓰나미가 밀려올 때 10여척 어선들은 거꾸로 쓰나미를 향해 깊은 바다로 나가 참사를 피했다는 소식이었다. 문득 내 머리 위를 날며 무언가 귓속말을 하려던 그 센다이의 갈매기가 떠올랐다. 그 때, 그 어부의 안부를 미리 알려주려 했을까? 아니면 “수심이 깊은 바다에선 해일이 높지 않다”는 센다이 어부들의 전설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김희봉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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