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팩스 공립학교 시스템에 속한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3월초 학생들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외부 손님을 초청해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행사를 갖는다. 필자도 계속 참여하고 있는데 주로 2학년 반을 찾아간다.
여러 해 동안 내가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책의 제목은 ‘내 베이글은 도대체 어디 있지(Where on Earth Is My Bagel)?’이다.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이고, 이야기의 배경 또한 한국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찾아가는 학교도 가능하면 한인학생들이 많은 곳이다.
책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어린아이가 뉴욕 베이글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뉴욕 베이글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둘기 다리에 베이글 주문 쪽지를 묶어 뉴욕으로 날려 보냈다.
그러나 오랜 시간 후에 돌아온 비둘기는 베이글을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베이글을 만들 수 있는 조리법을 얻어 왔다. 아이는 조리에 필요한 재료인 밀가루, 꿀, 그리고 소금을 농부, 양봉업자, 그리고 어부로부터 구한다. 그리고 아주 큰 베이글을 만들어 모두가 맛있게 잘 먹는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를 읽어주며 아이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좋은 가치의 보편성이다. 미국에서 좋은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게 여겨질 수 있고 그것은 음식뿐 아니라 삶의 가치관에도 적용이 된다고 얘기해 준다.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항상 준비해 간 베이글과 주스를 간식으로 나눠준다. 아이들이 좋아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작년에 방문했던 학급의 한 한인학생으로부터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얘기를 들었다. 베이글을 처음 먹어 본다는 것이었다. 결코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된 학생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곧 그럴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먹는 음식에 베이글이 포함되지 않으면 베이글을 먹어볼 기회가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학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옛 추억이 떠올랐다.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 전까지 집에서 접하던 음식은 거의 한식이었다. 양식이라고는 점심으로 어머님이 가끔 만들어 주시던 양파와 마늘이 많이 섞인 햄버거나 핫도그, 피자가 전부였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기숙사에 기거하며 하루 세끼를 학교식당에서 양식으로 먹게 되었는데 대부분 처음 접하는 음식들이었다. 하루는 저녁식사 때 감자칩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 옆에 칩을 찍어 먹는 소스 같은 것이 보였다.
사실 그 때까지 감자칩을 소스에 찍어 먹어본 것은 어느 파티에 가서 한 번 먹어본 것이 전부였다. 그 때 소스에 찍은 칩의 맛이 훨씬 더 좋았던 것을 기억하고, 옆에 있던 하얀 소스를 듬뿍 덜어 가지고 식당 테이블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에 있던 학생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때 덜어온 것은 마요네즈였다. 지금이야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추억거리지만 그 후 한 동안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마다 주위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글을 처음 먹어본다고 한 한인학생도 어느 정도의 어색함이 있지 않았을까 해서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는 우리의 자녀들이 한국문화와 미국문화 사이에서 성장하는 가운데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작은 일로 위축되는 자녀가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어린 마음에 오랫동안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밖에서 겪는 일상생활 중 작은 부분들도 섬세히 챙겨주는 배려가 절대로 필요하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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