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옷가게의 사장인 순실씨가 결혼을 한다. 그녀의 신랑감과 밥을 함께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대화가 궁했다. 잘 모르는 사이에 공통 화제도 없으니 어색하였다. 한국 사람들이 흔히 하는 고향과 족보에 대해 몇 마디 말을 하다가, 뜻밖의 인연을 건졌다. 신랑의 누이가 내가 가르친 제자인 것이다. 고3 담임을 내가 했었다며 다들 흥분하여 옛날 사진이 셀폰으로 오가고 전화 통화를 하고 한바탕 법석이었다. 미안하게도 나는 기억이 선명하질 않았다.
순실씨의 시누이이자 나의 옛 제자가 드디어 지난 연휴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 남편과 여동생, 어머니까지 온 식구가 출동을 한 것이다. 졸업앨범과 추억의 사진을 들고 왔다. 앨범 속엔 젊은 날의 내가 담임선생으로 웃고 있었다. 앨범을 보고 제자의 실물을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다.
앨범 속의 다른 제자들의 근황을 묻고 이 일 저 일로 수다가 만발했다. 따져보니 제자는 19세 꽃띠였고 나는 28세 청춘이었다. 겨우 아홉 살 차이 나는 스승과 제자는 이제 함께 늙어가는 중이다. 제자의 어머니는 생활관에 절 받으러 오셨을 때 나를 만난 적이 있다시며 말끝마다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매우 민망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사명감도 없는 엉터리 교사였는데 말이다. 결혼을 앞두고 혼수 밑천을 마련하려고 한 선생 노릇이었다. 거기에다 한복을 떨쳐입고 예절지도까지 하였으니 소도 웃을 일이다. 예의라고는 도무지 없는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84년에 교직을 그만두고 미국에 왔는데, 제자도 그 뒤에 미국에 와 살면서 미국에 갔다는 내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제자가 기억하는 나는 ‘단 하루도 같은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과 ‘오늘은 담임이 무엇을 입고 올 것인가?’가 학생들의 화제였다고 한다. 가르치는 것보단 옷치장에 비중을 두었다는 말이니 우습다. 남을 통해 나의 젊은 날의 허접한 역사가 보인다. 학생 선도를 가장하여 공짜 영화 관람도 많이 한 사실은 다행히 제자들은 모른다.
키가 작아 2번이었던 제자 진숙이는 교탁 바로 앞에 앉아 눈을 말똥거리며 나를 쳐다보던 소녀였다. 교복 자율화가 시작되던 그 시절 모두들 화려한 옷을 입으려 광풍이 불었는데, 얌전한 사복을 입어 내 맘에 들었던 모범 학생이었다.
그 사이 별로 자라지 않아 아담 사이즈 어른이 되었는데, 자기보다 두 배는 큰 미국 신랑을 만나 함께 있는 걸 보니 대견하였다.
27년 만에 만난 제자로부터 향긋한 향과 양초와 우단 같이 붉은 거어베라 부케를 받았다. 자격도 없는 내가 황홀한 선물을 받으니 눈물이 났다. 만나는 순간부터 눈물이 글썽하던 제자도 함께 울었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선생 노릇을 하는 것인데 말이다.
매일이 마지막이듯 간절하게 사람을 대하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 일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도 반갑도록.
이 정 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