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호의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가 여러 가지로 화제다. 작품의 문학성도 그렇거니와, 암 투병 중에 원고지 1,200매 분량의 장편을, 그것도 단 두 달 만에 완성한 놀라운 힘,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감대… 등등 화제가 풍성하다.
많은 화제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원고를 손으로 썼다는 사실이다. 암 때문에 손톱이 빠져 골무를 끼고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만년필로 메웠다고 한다. 가히 인간문화재 수준이다.
이 거룩하고(?) 찬란한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쓰고 앉았다니 시대에 뒤떨어진 미련한 짓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본질이 담겨져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 예술과 기술의 관계 등의 근본적 문제…
최인호 말고도 손으로 쓰기를 고집하는 작가가 아직도 더러 있다. 소설가 김훈, 김홍신 같은 이가 대표적인 예다. 시인의 경우는 물론 더 많다.
컴퓨터는 여러 모로 편리하다. 그러나 인생의 깊이를 파고드는 호흡 긴 글을 쓰기에는 역시 원고지가 제격이라는 고집이다. 활자화된 뒤에도 읽어 보면 손으로 쓴 글인지 컴퓨터로 때린 글인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의 말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잘 조화시켜 디지로그 문화를 만들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흔히 “컴퓨터는 단순한 연장이다, 충실한 머슴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기계는 사람을 변모시킨다. 자꾸 쓰다보면 컴퓨터에 끌려 다니기 쉽다. 그리고 결국은 몸과 마음까지 변해 버리고 만다. 디지털 때문에 인간의 뇌 구조가 변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는데, 나중에는 우리의 생김새도 ET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예술창작에 있어서, 더구나 인간의 정신과 영성의 문제를 다루는 작품에 있어서는 더욱 기계의 한계가 뚜렷하다. 작가 최인호는 “이번 작품은 누군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 쓴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고백했다. 그 누군가는 물론 하늘이다. 그걸 컴퓨터로 받아쓴다? 신문기자라면 모를까…
그런 점에서도 최인호의 신작이 반갑고 고맙다. 전자책에 밀려 종이책이 없어질 것이라는 예언이 나온 지는 벌써 오래다. 마찬가지로 연극 같은 영세예술도 결국은 없어지고 말거나, 골동품으로 겨우 연명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연극은 끝끝내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다. 영화나 TV 드라마가 기술의 힘을 빌려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연극은 여전히 모든 것을 사람의 몸으로 때워야 하는 처절한(?) 가내 수공업이다. 영원히 디지털이 될 수 없는 운명이다.
사람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결국은 사람이다. 컴퓨터는 사랑을 할 줄 모른다. 인간의 뜨거운 숨결, 땀 냄새가 주는 살아 있는 감동과 생명감을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노릇이다. 컴퓨터가 사랑을 하고, 사람 냄새를 풍기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인간들은 앞으로도 지독하게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연극을 보고, 번거로워도 음악회에 찾아가서 졸고…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 냄새가 그립기 때문에,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았을 때의 짜릿한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다른 것은 몰라도, 편지만큼은 손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서 보내고 싶다.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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