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8일 막을 내린 LA현대미술관(MOCA)의 대규모 특별기획전시회 ‘스트리트 아트전’(Art in the Streets)을 매주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무료로 감상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거리의 미술가 뱅크시(Banksy)가 “그래피티를 돈 내고 보아서는 안 된다”며 큰 돈을 선뜻 내놓아, 전시회의 월요일 관람료를 전부 본인이 부담했던 것.
“그래피티를 돈 내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한 마디에 뱅크시의 사상이 잘 드러난다. 길거리 미술인 그래피티는 누구나 부담없이 감상해야 하는 공공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회에는 뱅크시의 작품들도 전시되었는데, 자신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이 꽤나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큰돈을 선뜻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역시 뱅크시답다.
이 전시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그래피티의 역사와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민 대규모 축제 마당으로, 미국과 유럽 등 그래피티 판의 이른바 수퍼스타들의 작품이 대거 전시되었다.
영국 출신의 스트리트 아티스트 뱅크시는 그래티피 동네의 전설적인 수퍼스타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져서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처럼 제도권 미술시장에 흡수되기 직전의 상황인데, 용케도 길거리 미술가로 버티고 있다.
뱅크시라는 이름은 물론 가짜 이름이다. 비디오를 통해 그의 모습은 공개되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철저하게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래피티 또는 낙서가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뱅크시 덕분에 그래피티의 격이 한 단계 높아졌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작품이 워낙 기발하면서도 쉽고 통쾌하기 때문이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전쟁 반대, 폭력에 대한 저항, 경찰관으로 상징되는 권력 비웃기, 현대 소비문명 비판, 기존 미술의 권위 조롱하기, 자유에 대한 갈망… 등등 매우 근본적이고 묵직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무거운 주제들을 누구나 금방 공감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표현해낸다. 순식간에 그려내는 그림 솜씨도 대단하고, 파급효과 또한 막강하다.
시위대가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장면, 방독면을 쓰고 골프를 치는 사람들, 월남전의 이미지로 유명한 벌거벗은 소녀가 미국의 상징인 미키마우스와 맥도널드 햄버거 모델의 손을 잡고 있는 장면, 원시시대 동굴벽화에 그려진 샤핑카트 등… 어디서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사람들이 열광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유머와 패러디는 뱅크시의 강력한 무기다. 그의 그림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그리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뱅크시를 ‘벙긋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작품이나 그가 하는 일들을 보면 저절로 벙긋이 웃음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니 영국 경찰이 뱅크시를 단속하기는커녕 그의 작품을 보존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고, 건물주들은 자기 건물 벽에 뱅크시가 한 작품 남겨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앤젤리나 졸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같은 할리웃 스타들이 소장하고 있고, 소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유명 미술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뱅크시의 활동 무대는 영국 런던의 길거리에서 세계로 넓어졌고, 관심사도 다양해졌다. 팔레스타인타인과 이스라엘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으로, 세계 최고의 미술관으로, LA 동물원으로… 종횡무진하고, 영화도 제작하고, 퍼포먼스도 펼친다. 뿐만 아니라, 그래피티를 통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힘쓰기도 한다.
그가 얼마나 더 미술자본의 유혹을 이겨내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세상이여, 뱅크시에게 자유를 허하라!
장 소 현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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