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 한인사회의 모습이 이렇다. 꼭 일이 터져야만 움직인다.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허둥지둥 막기에 급급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흩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말이다.
요즘 시끄러운 LA시 선거구 재조정안이 그렇다. 이미 예견됐던 일인데도 한인사회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선거구 재조정안은 10년 만에 한 번씩 찾아오는 미국의 연례행사다. 인구센서스가 끝나면 인구 분포를 바탕으로 선거구를 재조정하는 것이 관례다. 연방의회부터 주의회, 시의회까지 선거구를 재조정하는 작업이다.
한인타운을 한 선거구로 묶어두면 한인들의 표심뿐 아니라 자금력이 집결돼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인타운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다. 시정부에 한인 보좌관들, 커미셔너를 들여보내고 선거구 재조정위원회에 한인들을 포함시키면 모든 것이 해결 될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지난해 한인타운 북동쪽에 똬리를 튼 ‘리틀 방글라데시 거리’만 해도 그렇다. 그들이 시의회를 상대로 활발히 로비를 벌이고 있는 동안 한인사회에서는 눈치도 못챘다. 이미 결정단계에 들어가서야 허둥지둥 나섰지만 기대만큼 소득은 없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타운에 ‘엘살바도르 거리’ ‘몽고인 거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한인타운에 배정된 수백만 달러의 커뮤니티 재개발 기금(CRA 기금)이 타 커뮤니티로 넘어갈 뻔 한 적도 있었지만 뒤늦게 알아차려 간신히 막은 적도 있다.
선거구 단일화에 젊은 단체들이 뒤늦게나마 힘을 모아 대처하고 있으
나 그들만으로는 역부족인 듯싶다. 초기에는 한인타운을 어디로 어떻게 합쳐져야 하는 지에 대한 의견도 제각각 이었다. 시 차원에서 타운 대부분을 10지구에 포함시키는 최종안을 마련했지만 한인사회는 반대의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왜,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 아시안 커뮤니티가 많은 13지구에 편입해 달라는 요구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돈이 넘쳐나는 ‘노른자’ 한인타운을 쉽게 내줄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엊그제 공청회에서는 ‘10지구 포함안’ 반대에 나섰던 한 한인 인사가 돌연 찬성 쪽으로 돌아서는 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정치인들에게는 투표권 못지않게 돈도 중요하다. 수년전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LA시장이 한인사회를 현금인출기인 ‘ATM’으로 비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장은 한인사회가 정치인들의 ATM 노릇 만 하지 말라고 충고 했던 것이다. 돈을 주면 받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동안 술 판매 면허나 규정을 어긴 유흥업소 오픈 등 받지 않아도 되는 것들만 받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왜 이런 일이 반복 된 것인가. ‘구심점이 없어서’ 라고 본다. 한인사회를 리드하고 이끌어갈 구심력과 추진력을 갖춘 리더나 단체 말이다.
구심점이 돼야할 한인회는 논란의 중심에만 서 있다. 회장 선거의 잡음으로 몸살을 앓더니 요즘은 노인회관 건립을 놓고 ‘기싸움’에 열을 내고 있다. 차기 회장을 뽑는 선거 규정을 마련한다면서 기존 타운 단체장의 출마를 원천 봉쇄해 버려 특정 인물의 출마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게 하고 있다. 한국의 옛 군사정권에서나 볼법한 ‘관건 선거’의 구태를 재연하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한인사회가 폭동의 불바다에서 울부짖던 때가 벌써 20년이나 지났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로 몰려 주류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배웠던 것이 정치력 신장과 구심점의 필요성 아니었나. 원통한 사연들이 소름처럼 돋아나는 4·29 폭동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요즘 미국 정치인들을 휘어잡는 ‘정치행동위원회’(PAC)가 한인타운 내에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소잃고 외양간은 고쳐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섭 부국장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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