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폐기에 의지해 중증 치료 지켜보는 부모마음‘숯덩이’ 간혹 기적처럼 획복되기도
중환자실 신생아들
축복 속에서 삶의 첫 장을 열지 못하는 생명이 있다. 태어난 순간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중환자실의 신생아들이다. 자력호흡조차 못하는 이들의 싸움은 조용하지만, 처절하다. 헌터 카리요도 LA 칠드런스 하스피틀에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신생아‘중환자’다. 생후 10일된 헌터는 생명보조 장치에 의존해 연명한다. 그의 심장과 폐, 콩팥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생명보조기에 주렁주렁 연결된 코드가 그들을 대신한다. 기계를 끄고 코드를 제거하는 순간이 그의 명줄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헌터는 1주일 전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감염을 일으켜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춰선 그는 의료진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다. 그는 하루 24시간을 의료진에 둘러싸여 보낸다. 마취상태인 그의 주변은 늘 의사와 간호사, 호흡기 치료사, 심장 전문의와 외과 전문의들로 붐빈다.
그들이 잠시 자리를 뜰 때마다 타밀과 조가 아들 곁으로 다가선다.
마취상태에서 지내는 헌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정작 아픈 쪽은 부모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내 새끼가 살기 위해 버둥대는 안쓰러운 모습을 손 놓고 지켜보며 타밀과 조의 마음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몇 분 간격으로 타밀은 살며시 헌터의 자그마한 손을 쥐어본다. 앞으로 몇 년 뒤 아들의 커진 손을 잡아볼 수 있을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이 그렇게 큰 축복인 줄을, 그녀는 미처 몰랐다.
남편은 가끔씩 병실 밖으로 나간다. 타밀은 그가 울러 가는 것임을 안다. 타밀의 눈물은 이미 말라버렸다. 그녀는 수시로 성호를 그어가며 기도를 한다. 아들을 살려달라는 애끓는 간구다. 만일 그를 꼭 데려가셔야 한다면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고통이라도 없도록 해달라는 기도가 추가됐다.
아직 누구를 닮았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아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타밀의 가슴은 미어지고 목이 아파온다. 눈물이 마른 건조한 오열이 수시로 엄습한다.
조 카리요(32)는 “아침마다 근심 가운데 깨어나 하루 온종일을 불안감 속에서 보낸다”고 하소연한다.
금요일에는 헌터를 담당하는 신생아 중환자 의료팀에 새로운 얼굴이 추가된다. 내릴리 고메즈(19)는 조와 타밀에겐 살아 있는 ‘희망의 상징’이다.
고메즈는 어린이 중환자실을 거쳐 간 ‘생존자’다. 그녀 역시 태어나자마자 심폐기에 연결된 채 목숨을 이어갔다.
공교롭게도 19년 전 그녀가 누웠던 자리를 지금은 헌터가 차지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중화자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고메즈는 병실에 필요한 간호용품을 공급하고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자 부모를 위로하는 것이 그녀가 맡은 가장 큰 임무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중인 고메즈는 카리요 부부에게 자신의 목에 난 흉터를 보여주었다. 19년 전 호흡기, 심장과 폐에 튜브를 연결시키기 위해 절개한 자리다.
고메즈는 당시 자신을 돌봐줬던 간호사들과 나란히 일한다. 얼마 전에는 병원 측 주선으로 같은 병동에서 지냈던 ‘동창’들과도 재회했다.
타밀 카리요는 고메즈를 보며 희망의 불씨를 되찾았다고 말한다. 타밀은 고메즈에게서 내 아이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다.
사실 헌터의 회복을 기대하기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요, 바라는 것들의 증거”라는 성경 말씀에 의지해 아들의 기사회생을 믿으려 애쓰는 그녀에게 고메즈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표’다.
헌터의 상태는 여전히 위중하다. 타밀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 단위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그러나 아들과 같은 처지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는 고메즈를 보면 헌터 역시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이 고개를 든다.
병원 측 통계자료에 따르면 1987년 이후 1,000여명의 신생아가 칠드런스 하스피틀에서 심폐기 신세를 졌다. 이들 가운데에는 헌터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이나 심장, 혹은 급성 호흡기 장애로 병원으로 공수된 신생아들도 있었다.
이들은 심폐기에 연결된 채 심장과 폐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까지 수 주일을 병원에서 지내야 한다.
심폐기가 없었다면 헌터의 일생도 ‘삼일천하”로 끝났을 것이다. 헌터와 같은 신생아가 심폐기의 도움을 빌어 소생할 확률은 80%로 꽤 높은 편이다. 반면 선천성 급성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기의 생존율은 이보다 훨씬 떨어진다.
고메즈는 선천성 질환인 횡경막 탈장으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횡경막 탈장이 일어나면 체내 장기들이 가슴으로 밀려 올라가 호흡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1993년 고메즈를 돌보아주었던 다이앤 리얼은 아직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한다.
당시 고메즈가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는 리얼은 “중환자실의 부모들에게 그녀는 큰 영감을 제공한다”며 “자신의 아이가 겪고 있는 동일한 과정을 거쳐 시련을 이겨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적지 않은 위안과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헌터는 앤티로프 밸리 하스피틀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몸무게도 6파운드 이상으로 건실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지닌 아기는 건강해 보였다.
이틀 후 헌터는 부모의 품에 안겨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집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헌터는 사지를 뒤틀며 맹렬하게 울어댔다. 타밀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급히 병원으로 되돌아갔지만 헌터의 상태는 급속히 악화됐다. 그들의 눈에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앤티로프 밸리 병원 측은 헌터를 헬기에 태워 LA의 칠드런스 하스피틀로 긴급 공수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LA 병원의 의사들은 가급적 신생아의 몸에 칼을 대지 않으려 했지만 헌터의 심장박동이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최소한의 국소절개를 통해 심폐기의 튜브를 몸속에 집어넣어야 했다. 일단 기계로 아기의 심폐기능을 대신해 주며 항생제를 이용해 감염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고메즈는 튜브를 주렁주렁 달고 침대에 누워있는 헌터를 바라보며 “내가 꼭 저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메즈는 간호사 리얼로부터 “그 때 넌 참 대단한 전사였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 “헌터 역시 나 못지않은 것 같다”고 추어주었다.
토요일 밤, 의사들은 헌터의 몸에서 심폐기 튜브를 떼어냈다. 심장과 폐의 기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완전한 자력호흡은 불가능하다. 폐기능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계속 산소호흡기 신세를 져야 한다.
타밀은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치료의 한 단계가 끝났을 뿐”이라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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