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LA 카운티 정부, 1,464명 합동 매장1877년부터 매년 보일하이츠 공동묘지에
▶ 기독교·유대교·불교·무슬림교… 다종교 장례식 “외로운 영혼에게 안식 찾아주는” 사색의 순간
초겨울로 접어든 지난 수요일 쌀쌀한 12월의 아침, LA 보일하이츠의 에버그린 메모리얼팍 공동묘지에선 간결하고 엄숙한, 그러나 쓸쓸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 1,464명의 유골이 함께 묻히는 합동장례식이었다. 커뮤니티 지도자들과 각 종교계 성직자들이 참석해 이들의 외로운 마지막 길을 전송했다.장미꽃잎이 뿌려진 그들의 합동묘소엔 이름이 적힌 묘비가 없다. 작은 석판에 그들이 사망한 연도인 ‘2010’만 새겨져 있을 뿐이다.
LA카운티는 1877년 이후 1가와 로레나 스트릿 코너의 묘지에 매년 한 번씩 무연고 사망자들을 합동 매장해 왔다. 카운티 화장터에서 1일 약 6구씩 화장하여 2~3년간 보관하다가 연고를 찾지 못하면 합동 매장을 하는 것이다. 금년엔 1,464명의 유골이 함께 묻혔다.
무연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노숙자들이다. 홈리스일 뿐 아니라 이름도 없는 네임리스인 사망자도 있고 장례치를 형편이 못된다며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경우도 상당수다.
이 묘지에서 수 십 년간 일해 온 한 인부는 그래도 요즘은 카운티 정부가 나서서 장례식을 치러주고 있지만 전에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저 매장되었으며 인부들이 돈을 거두어 꽃을 사서 이름 모를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주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금년엔 최근 9년 중 매장된 수가 가장 적은 편이다. 지난해엔 1,656명이 묻혔고 2004년 1,563명이 묻힌 이후 2006년엔 1,798명이 묻혀 최고를 기록했다. 카운티 관계자들은 매해 무연고 사망자의 합동매장 소식이 미디어를 통해 조명되면서 무연고가 약간씩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LA카운티-USC 메디칼센터의 대변인 로사 사카는 금년 무연고 사망자의 약 3분의 2는 카운티 영안실에서, 나머지의 대부분은 검시관실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이 두 곳에서 나온 시신 중 약 400명의 유골은 가족들에게 인계되었다.
지난 4일 오전10시에 거행된 장례식은 다종교 의식이었다. LA 카운티-USC 메디칼센터의 원목인 크리스 포넷 목사가 의식을 주재한 가운데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무슬림교, 불교의 목사, 랍비, 스님 등 성직자들이 다양한 언어로 망자들의 마지막 길을 위한 축복 기도를 올렸다.
아침의 차가운 날씨는 햇살이 비치면서 차츰 포근해졌다. 저만치 언덕 아래 거리에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동차 소리가, 머리 위에선 비행기 소음이 시끄러웠지만 언덕 위 묘지 근처는 고요했다. 향불이 피워졌고 쌉사름한 향기가 공기 속을 떠돌았다.
소수이지만 일반인 참석자들도 있었다. 정원에서 꺾은 분홍빛 장미를 들고 온 카렌 풀크스는 2008년엔 무연고 사망자로 묻힌 친구를 추모하기 위해 왔다면서 형편이 너무 어려워 시신을 인수하지 못했던 친구 가족의 슬픈 사연을 이야기 했다. 카운티 검시관실에서 일하는 한 여성은 2년째 이 합동 매장식에 참석하고 있다.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고 애도해 주기 위해서다.
단 크나비 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장도 자신이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책임감보다는 고인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이며 카운티는 무연고자의 매장을 주관함으로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최후의 안전망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후 고인들을 향해 인사했다. “난 당신들에 관해 모릅니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에 선 당신들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힘든 일입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인 사람들을 위해 품위 있는 장례식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장례의식을 집전한 포넷 목사는 “누구든 고단했던 삶의 마지막에 주위에 아무도 없이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 이 같은 묘지가 마련된다는 사실은 우리사회가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지금 이 시간이 우리사회에게 ‘외로운 영혼에 안식을 찾아주는 사색의 순간’을 허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한 줌의 재로 하나의 묘소에 합동 매장되는 1천여 명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식은 앞으로도 매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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