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접한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노년의 남성들이다. 나이 들어서도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들이다.
몇 주전 예배시간에 목사님은 설교에서 소설이자 영화 ‘은교’를 예로 들었다. 노교수가 젊고 아름다운 제자에게 연정을 품는 이야기다. 나이든 남성이 체면과 양심 때문에 당당하지 못하고 매일 바라만 보며 어린 제자를 마음에 품는 모습이 내겐 참으로 초라해 보인다. 평생 쌓아온 인격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알면서 왜 저런 욕망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하니 주인공이 미워지기도 한다. 그런 마지막 삶을 살지 않도록 젊어서부터 신앙으로 인격을 쌓아 가자는 것이 설교 내용이었다.
그 즈음에 본 영화 ‘욕망의 꽃’도 70대의 교육자와 젊은 간병인 간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며, 살고 싶은 욕망과 갖고 싶은 욕망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힐책한다. 누구나 갖고 있는 본연의 감정이겠지만 그런 남성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좀 의연할 수는 없을까? 이 주인공들과 비슷하게 황혼의 문턱에 서있는 나로서는 이런 내용들이 참으로 쓸쓸하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저렇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늙지는 말자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지난 추수감사절 연휴에 남편과 함께 북가주에 사는 남편의 고교 동창을 방문했다. LA에서 안식교 목사로 오래 시무하고 은퇴하신 후 새크라멘토에서 두 시간 더 북쪽에 있는 파라다이스라는 지역에 사신다.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흙길을 한참 따라 올라가니 맨 끝자락에 외딴 판잣집 한 채가 나왔다. 그곳이 그 부부가 사는 곳이다. 문 앞에 들어서니 하얀 개가 우리를 반기고, 단조로운 하얀 나무 울타리가 집 주인의 삶을 느끼게 했다. 하얀 담장, 순하게 생긴 흰 개, 지병으로 백발이 되어버린 집 주인 … 마음이 저미었다.
점심상으로 뒷산에서 딴 고사리, 곰치나물, 씀바귀나물 그리고 집에서 기른 콩나물국이 나왔다. 365일 이런 나물들이 이 댁의 식사란다.
식사가 끝나고 앞마당에 나가 보니 보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여름에는 계곡에 물이 불어 사람들이 많이 놀러 온다고 한다. 그러면 보트를 빌려주고 놀게 하고 점심식사도 대접한다고 한다. 그래서 “보트 빌려주는 값은 얼마예요?” 하고 물으니 목사님은 겸연쩍은 듯 “돈은 무슨 돈, 밖에 나가 봉사도 못하는데, 찾아오는 사람들 즐겁게 해주는 게 나의 기쁨이지. 음식도 산에서 뜯어다 만드는데 무슨 돈이 드나” 하셨다.
순간 나는 답답하고 불안했던 나의 나머지 삶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을 비우고 사는 그분들의 모습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늙어 가면서도 넘치는 욕망을 떨쳐내지 못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다가 남을 배려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목사님 부부의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삶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숙연해지면서 그 동안 답답했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곳, 파라다이스가 내게는 진짜 ‘파라다이스’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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