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군사관학교가 지난달 27일 졸업식을 앞두고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었다. 대통령상 수상자 선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상은 으레 졸업성적 1등인 생도가 받게 되어있는 데 올해 공군사관학교는 2등 생도를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었다.
2등 생도가 1등 생도보다 돋보인 점은 하나. 성별이다. 1등은 여성, 2등은 남성이었다. 대통령상 수상자는 ‘공사 졸업생도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학업성적 뿐 아니라 체력, 리더십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해서 내린 결과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대외적 설명이 어떠하든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어떤 정서적 불편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 대학도 아니고 남성적 강인함이 강조되는 사관학교에서 여성이 졸업생 대표로 상을 받는 것이 공군 측은 영 마뜩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차별 논란이 예상외로 뜨겁게 번지자 공사는 결정을 번복하고 1등인 여생도에게 대통령상을 수여했다. 졸업식은 무사히 끝났다.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8일 뉴욕에서 일어난 대규모 여성 노동자 시위를 기념하며 만들어진 여성의 날이 올해로 106회를 맞았다.
20세기 초 미국은 산업화와 도시화, 대규모 이민물결로 활기차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도시 거리마다 공장들이 들어섰고 방직공장, 봉제공장 등 공장주들은 여성들, 특히 갓 이민 온 이주 여성들을 대거 고용해 가혹하게 부렸다.
하루 10여 시간 일하고 받는 임금은 남성의 1/2~1/3 수준. 골병이 들도록 일해도 허기를 면하기 어려웠다. 참다못한 여성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그 잔 물결들이 20세기 여성권익 운동의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삶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달라졌다. 성별에 따른 고용, 임금, 승진 등의 차별이 어느 정도 남아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 들어갈 수 없는 곳은 공식적으로 없다.
학교는 이미 여학생들이 꽉 잡았다. 초등학교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여학생들이 대학 캠퍼스에서 수적으로 우세하다. 석사학위의 60%, 법대와 의대 학위의 절반, 그리고 MBA 등 비즈니스 학위의 44%도 여학생 차지이다. 2009년에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박사학위 취득자 중 여성이 남성 보다 많았다.
학교에서 시작된 변화는 사회전반의 지각변동으로 이어진다. 여성 대통령, 여성 총리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기업들이 여성 리더십에 편안하다. 휼렛 패커드, 야후 등 하이텍기업은 물론 록히드 마틴, 제네럴 다이나믹스 등 방위산업체와 같이 여성과거리가 멀 것 같던 분야에서도 여성이 수장을 맡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GM에 여성 CEO가 등장했는가 하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도 사상 처음으로 여성 의장을 맞이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남녀차별을 모르고 자란 젊은 세대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과거 남성 차지였던 전문분야와 높은 지위는 점점 여성 차지로 바뀌고 있다. 변화는 엄연한 현실인데 그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의식, 고정관념이다.
한국 공군사관학교의 경우 여생도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올해로 14번째 졸업자를 배출했는데, 그중 여생도가 전체 수석을 한 것이 6번이나 되었다. 여성이 점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현실인데 공군과 공사 측은 아직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남성이 위, 여성이 아래’라는 전통적 남성중심 사고방식을 지워버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는 변해도 사고방식이 변하지 않기는 사적인 관계에서 특히 심하다. 현재 미국에서 아내가 남편보다 고소득인 가정은 전체의 1/5 정도 된다. 그런데 이렇게 돈 잘 버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집안에서 여왕처럼 손 놓고 있느냐 하면 그게 아니다. 남편수입이 더 많은 일반가정보다 가사분담이 오히려 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몸이 고달프다고 하소연 하는 아내들이 있다.
고소득의 젊은 여성들은 연애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성공한 여성을 부담스러워 하는 남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에서도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여성을 신붓감으로 소개하려고 하면 의외로 남성 쪽에서 꺼리는 경우를 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데 우리의 의식은 아직 거북이 걸음이다. 자신보다 훨씬 능력 있는 아내나 연인 앞에서 남성이 편안할 때, 자신보다 못한 남편이나 연인 앞에서 여성이 편안할 때, 그때 남녀는 진정으로 평등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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