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사시던 시어머님이 오래 전 우리 가족과 같이 지내신 적이 있다. 아이들 어렸을 때 미국에 오셔서 2년 쯤 아이들을 돌봐 주셨다. 말벗도 없는 낯선 곳에서 하루 종일 손주들만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 친구가 생겼다. 역시 손녀를 돌보시던 이웃의 이란 할머니였다.
두분은 매일 만나 함께 아이들을 돌보며 이야기를 나누셨다. 한분은 한국말로, 다른 분은 이란말로. 두분 다 아는 영어라곤 ‘베이비’ 한 단어뿐이었다. 각자 자기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손짓 발짓 그리고 미소로 필요한 이야기들을 필요한 만큼 주고받으면서 두분은 친구로 지내셨다.
소통에서 언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란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언어가 달라도 가능한 것,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안 되는 것 - 소통은 마음이 주연, 언어는 조연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활짝 문을 열고 상대방을 향해 달려가는 데 말이 좀 어설프게 따라간들, 안 따라간들, 무슨 큰 문제가 되겠는가. 눈빛만으로도 상대방이 하려는 말을 다 알아차리던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LA 한인가정상담소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 간의 상담통계를 분석해 발표했다. 부부 간 갈등문제가 상담사례의 43%를 차지했다. 성격차이, 의처·의부증, 외도, 의사소통 문제 및 대화단절, 언어폭력, 중독 등이 갈등의 요인들로 꼽혔다. 부부가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었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들, 조기에 발견해 막았을 수도 있었을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소통이 안 되어서 부부가 받는 상처, 가정이 치르는 대가가 너무나 크다.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은 한국말 쓰는 부부들이 왜 대화를 못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부부간 의사전달 방법의 차이, 대화기술 부족을 원인으로 든다. 남자는 화성에서,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할 만큼 남성과 여성은 다른데 대화방식 역시 그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별에서 온 그대’와 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신도림 영숙이’라는 유튜브 동영상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클릭이 잦아서 조회 수가 67만을 넘는다.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연애강좌를 하는 김지윤(좋은연애연구소장)씨가 남녀 간 대화 방식의 차이를 재치 있게 설명하는 동영상이다.
여성이 신이 나서 남자친구에게 “나, 신도림역에서 영숙이 만났어” 한다. 남성은 “그래서? 커피 마셨어? 밥 먹었어? 담에 만나기로 했어?”하며 계속 묻지만 여성은 모두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얘기를 왜 했는지 남성은 감을 잡지 못한다. 반면 같은 이야기를 여자 친구들에게 하면 반응은 전혀 다르다. “정말?” “웬일이니!” “영숙이 만났어?” 하며 그 우연한 만남 자체를 같이 반가워한다.
여성의 말에 ‘정말?’ ‘진짜?’ 하며 추임새만 넣어주면 좋은 대화법이라고 김 소장은 남성들에게 알려준다. 여성과의 소통에는 경청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1시간30분짜리 강좌 중 일부인 이 동영상은 중년남성들 사이에서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아내와의 소통 문제로 애를 먹는 남편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언어학자들은 남녀 대화법의 차이를 ‘보고’와 ‘관계’로 구분한다. 남성에게 대화는 정보를 전달하는 보고 행위인 반면 여성에게는 공감하며 관계를 긴밀히 하는 친교행위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성은 대화 중 문제해결에 집중하고 여성은 감정 공유에 중점을 둔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결혼 초 몸이 아파서 서러웠던 기억이 있다. ‘아프다’고 말하자 남편 하는 말이 “진통제 먹고 푹 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섭섭해 뾰로통해지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은 말한다. “아프니까 약 먹으라는 데 왜 불만인가?” 아내는 말한다. “아프면 약 먹는 거 누가 모르나. 얼마나 아픈지 걱정하며 보살펴 주는 게 사랑 아닌가?”신혼에는 이런 일들로 토닥토닥 많이 싸우다가 해가 갈수록 아예 기대를 접으면서 소통의 길은 막혀간다. 그리고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복병들이 닥치는데, 이때 소통의 통로가 막혀있으면 부부가 함께 헤쳐 나가기 어렵다.
한없이 쉬우면서도 한없이 어려운 것이 소통이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 지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답은 거기에 있다. 남편은 ‘정보’의 별에서 온 존재, 아내는 ‘공감’의 별에서 온 존재라고 기억하자. ‘별에서 온 그대’와 소통하며 오순도순 사는 길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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