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80년대 마약과의 전쟁 때 대부분 중형선고 / 현재 연방 교도소 수감자 절반 이상이 마약사범
▶ “비폭력 범죄 모범수들 사면”에 해당자들 부푼 꿈
지난 1999년 스캇 워커가 콜로라도주 플로렌스 연방 교도소에서 면회 온 어린 딸 라엘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
<< 오바마 행정부 조기석방 검토 중 >>
스캇 워커(42)는 애초부터 교도소에서 삶을 마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25세 되던 해 체포돼 수감된 후 2년간의 재판과정을 거쳐 콜로라도주 플로렌스 소재 연방 교도소로 보내진 워커는 마약거래로 종신형을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시간은 꾸역꾸역 흘렀고, 항소는 기각됐다. 결국 그는 종신수로 길고 긴 수형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17년 반을 보낸 지금, 그의 앞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쳤다.
오바마 행정부가 일정한 자격조건을 충족시킨 재소자들을 대거 조기 석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날아든 것.
잔여형기 감면 대상자의 자격조건은 6가지로 비폭력 범죄로 수감 중인 모범수들에게 1차적으로 혜택이 돌아간다. 따라서 감형의 혜택을 누리게 될 최대 수혜그룹으로는 마약사범들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연방 정부는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20년간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강화했다.
범죄율 상승과 늘어나는 거리폭력, 마약 남용에 관한 우려에 염증이 난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양형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것으로 정부의 노력에 화답했다.
그 결과물이 1986년 의회가 마련한 연방 마약남용단속법이었다. 당시 전염병처럼 기승을 부리며 미국의 대도시들을 휩쓴 ‘크랙’에 위기의식을 느낀 의회가 마약사범들에게 엄격한 의무적 최저형량을 적용토록 결정한 것이다.
연방 하원법사위원회 자문의원으로 마약남용단속법 제정에 참여했던 에릭 스털링은 “대중은 강력한 법을 원했고, 의원들도 벌칙을 강화하면 마약공급에 철퇴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 같은 전략에 회의적 여론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판사들 사이에서도 융통성 없는 양형에 관한 비판적 의견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마약사범에 대한 양형개혁을 촉구했으나 의회에서 발이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방 법무부가 비폭력 범죄로 수감된 재소자들에 초점을 맞춰 사면안을 검토 중인 것도 마약과의 전쟁으로 초만원을 이룬 교도 시스템의 과부하를 덜어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연방 교도소의 수감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마약사범이다.
이와 함께 크랙 돌림병이 기승을 부리던 1980년대에 체포돼 지은 죄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흑인 재소자들에게 감형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워커의 변호사는 법무부의 사면안이 그에게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제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법무부가 제시한 조기 출소의 6가지 조건을 두루 갖추었을 뿐 아니라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연방 판사가 자신이 1999년에 내린 형량이 지나치게 무거웠다며 지난 2011년 그의 감형을 지지하는 서신을 작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워커의 청원서가 수리되고 모범 복역수에 대한 크레딧까지 인정받게 되면 곧바로 조기 출소가 가능해진다.
그의 가족들도 희망에 차 있다. 워커가 체포될 당시 4세였던 딸 라엘은 “이번에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곧 22세가 된다.
남부 일리노이에서 성장한 워커는 14세 때에 마리화나를 시작한 뒤 내쳐 메스(히로뽕)까지 섭렵했다. 밴드의 기타주자로 활동했던 그는 마약이란 ‘로큰롤’의 라이프스타일에 늘 따라붙는 장신구였다고 회고했다.
10대 후반에 가족이 애리조나로 이주하자 워커는 그곳에서 일리노이로 마리화나와 메스, LSD 등을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워커는 매주 350~450달러가 들어가는 크랙을 조달할 수 있었다.
느슨하게 짜여진 마약조직의 중간 보스가 된 그는 마약 판매와 운반책 포섭으로 하루해를 보냈다. 새로운 운반책은 주로 그의 어릴 적 친구들 가운데에서 뽑았다.
1996년 경찰에 체포된 그는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과의 형량거래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1999년 함께 체포된 ‘동료’들 가운데 유일하게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반면 조직의 우두머리이자 마약 조달책임자였던 동일 전과 2범은 워커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는 조건으로 형량거래를 시도해 5년형을 받는데 그쳤다.
당시 워커의 재판을 담당했던 연방 판사의 말대로 그는 다른 무엇보다 의리를 중시하는 ‘꼴통’이었다.
워커는 하루의 대부분을 책읽기와 작곡으로 보낸다. ‘볼 앤 체인’이라 불리는 교도소 밴드를 이끄는 그는 무역 강좌도 듣고 있다.
“수감생활을 통해 나 자신을 향상시키고 더 많은 교육을 받으려 노력했다”는 워커는 “빵에서 지내는 동안 이전보다 인간성이 나빠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바깥세상을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생겼다. 비록 오랜 시간 사회로부터 격리됐지만 적응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허황된 기대가 무너질 때 따라오는 실망감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마음이 교도소 담벼락 너머로 외출할 때마다 “세상사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고 혼자 되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풀려나면 속죄하는 마음에서 “집에 짱을 박고” 향후 거취를 숙고할 계획이다.
그러나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자기 혼자 김칫국부터 마시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조금씩 위축되곤 한다. 그래서 늘 사족을 단다. “그야 물론 석방되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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