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업주부로서 아닌 직장인·남편·아빠 1인3역
▶ 정기적으로 요리한는 남성 2008년 42% 달해
■ ‘주방 책임지는 남편’ 갈수록 증가
조우 크리스버그는 출근길에 저녁거리를 고민한다. 맨해턴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그는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오늘 저녁식단을 어떻게 짤 것인지 궁리하며 시간을 보낼 때가 종종 있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다. 에너지드링크를 사기 위해 근처 마켓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갈 때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똑같은 질문이 빙글빙글 맴을 돈다. 올해 35세로‘토끼 같은 자식과 여우같은 마누라’를 둔 크리스버그는 “오늘 저녁은 또 뭘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껌 딱지처럼 끈덕지게 눌러 붙어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떤 식재료를 구입해야 할지, 냉장고 안에 어떤 음식이 남아 있는지 등등 저녁준비와 관련한 잡다한 생각들이 그의 뇌 속 깊은 곳에 복명처럼 매복해 있다.
매일 5시에 ‘칼 퇴근’을 하자마자 그는 지하철역으로 달려가 롱아일랜드 시티에 위치한 집으로 돌아간다. 귀가 길에 데이케어센터에 들러 생후 7개월 된 아들 해리슨을 픽업하는 것도 그의 임무다.
냉장고에 보관된 식재료가 동이 났을 때에는 빠듯한 시간을 쪼개 장도 보아야 한다.
1년 365일 가족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퇴근 후가 더욱 바쁘다.
주방에 들어서기 무섭게 로즈메리와 다임, 양파로 속을 채운 닭을 굽고 싱싱한 연어에 양념을 한다. 파미쟈나를 만들기 위해 가지도 볶는다.
크리스버그는 프리랜스 카피라이터이자 남편 겸 아빠다. 여기에 한 가지 수식어가 첨가된다. 그는 ‘주방을 책임지는’ 회사원이자 남편 겸 아빠다.
남자들이 할 줄 아는 음식이라는 게 기껏해야 바비큐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경력 8년차의 노련한 요리사다.
크리스버그처럼 집에서 정기적으로 요리하는 기혼 남성이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60년대에 비해 요리를 하는 기혼 여성의 수는 급속히 줄어든 반면 퇴근 후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서는 아빠들은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체이플힐 소재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연구원들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요리를 하는 남성의 비율은 1965년의 29%에서 2008년 42%로 껑충 뛰었다.
반면 1960년대 중반 이후 근로 여성 인구가 팽창하면서 ‘밥하는 여성’의 비중은 1965년의 92%에서 2008년 68%로 떨어졌다.
연방 노동부통계국의 자료를 보면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의 비율은 남성에 비해 아직도 두 배 가까이 높다. 하지만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 물을 묻히는 아빠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식사준비에 참여하는 기혼 남성들 모두가 크리스버그처럼 퇴근 후 매일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평일에 한두 번 식사준비를 하거나 주말마다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뉴저지 하일랜드팍의 조정 코치 데릭 하트위크(55)도 아내와 두 아들에게 매주 다섯 번 음식을 만들어준다.
하트위크 커플 역시 맞벌이 부부다. 하지만 두 사람 가운데 퇴근시간이 조금 이른 관계로 자연스레 남편인 그가 저녁상을 담당하게 됐다.
그의 주특기는 새우 스캠피 파스타와 부침가루를 입힌 닭가슴살 튀김이다. 수제 피자도 곧잘 만든다. 토핑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결정한다.
하트위크는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 뒤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가족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아이들의 숙제도 도와줘야 하고, 동네축구코치도 해야 한다.
두 아들의 아버지인 올해 44세의 TV 프로듀서 로린 웨데이머는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가족의 식사를 책임진다.
주말 시간표를 짜는 것도 그의 주중 일과 중 하나다. 서로 얼굴을 맞대기 힘들 정도로 바쁜 한 주를 보내야 하는 웨데이머 부부에게 토요일과 일요일은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고 가족단위로 오순도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날이다.
그러다보니 주말시간은 늘 빠듯하다. 그래도 그는 주말마다 닭고기와 스튜, 칠리, 야채 등을 구입해 평일의 먹을거리를 준비한다.
뉴욕 브루클린의 팍 슬로프에 거주하는 웨데이머는 “부부의 균등한 가사분담”을 철칙으로 삼는 ‘착한 남편’이다.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가사분담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크리스버그는 도무지 집안일을 거들 것 같지 않은 외모를 지녔다. 박박 민 민둥머리에 턱에는 수염이 무성하다. 몸에는 문신이 한 가득이다.
늦은 시간에 거리에서 마주치면 괜스레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험한 생김새다. 외모만 보면 영락없이 거칠디 거친 ‘마초 맨’ 타입이다.
그런 그가 가정의 주 요리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들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제약회사에서 풀타임 직원으로 근무하는 그의 아내 에이미는 “이런 남편을 만난 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솔직히 외모는 조금 험상궂지만 마음은 비단결이고, 음식솜씨는 수준급”이라며 남편 자랑을 늘어놓는다.
에이미라고 그저 날로 먹는 것은 아니다. 설거지는 늘 그녀의 몫이다. 가사의 효율적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크리스버그는 낮시간보다 저녁시간이 더 바쁘다고 털어놓는다.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매일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분명 고역이다. 시간 안배를 잘해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주방을 아내에게 넘길 의사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저녁식사 준비는 가족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다.
게다가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역할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태어난 지 일곱 달째인 아들은 주방에 놓아둔 하이체어에 앉아 말똥말똥 아빠의 저녁 준비를 지켜본다. 엄마가 늦게 오니 싫건 좋건 아빠의 곁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너무 어리지만 크리스버그는 앞으로도 계속 저녁준비를 할 것이고, 아들은 그 옆에서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자랄 것이다.
크리스버그는 아들에게 그만의 독특한 남성상을 심어주고 싶어 한다.
주방을 금남 지역으로 생각하는 시대착오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단호박빵을 만들 줄 알고, ‘먹방’인 푸드 네트웍을 즐겨 시청하며 요리에도 관심을 가진 외유내강의 ‘상남자’로 아들을 키우는 게 그의 소망이다.
<뉴욕타임스 본사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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