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손질 후엔 한층 얌전해지는 등 모범수 변신
▶ 교정당국 “기대했던 것보다 큰 효과” 적극 후원
엘리자베스 브람브리아(왼쪽)가 교도소 머리방에서 재소자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
[인기 만점 교도소 ‘머리방’]
머리방은 온통 핑크빛이다. 한쪽 벽에는 핑크색과 흰색의 줄이 서로 교차하며 연속무늬 패턴을 이루고 있고, 다른 쪽은 벽면 전체가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다.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는 ‘공주님의 침실’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느낌 좋은 ‘소녀 취향’의 공간은 아니다. 그보다는 성인용 버전에 가깝다. 머리 손질 전후의 사진들이 전시된 벽면 위에는 “자신 있는 여성이 아름답다”는 글귀가 큼직한 글씨로 적혀 있다. 방 한쪽 구석에서는 진저 곤잘레즈가 이제 막 샴푸를 마친 한 여성의 젖은 머리칼을 곧게 펴고 있다. 길고 검은 자신의 머리타래를 암 투병중인 어린이에게 기증한 매리 모니크 오리츠는 남은 머리털을 얌전하게 말아 올리는 중이다.
겉보기에는 일반 헤어살롱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헤어드레서들은 물론 고객들까지 ‘LA카운티 교도소’라는 스탬프가 찍힌 푸른 색 유니폼을 입고 있다. 죄수복이다. 이곳의 기술자와 손님 모두가 재소자라는 얘기다.
가만히 눈 여겨 보면 특이한 점이 또 하나 있다. 샴푸와 컨디셔너, 블로우 드라이어, 머리빗 등 살롱용품들이 여기 저기 놓여 있지만 가위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미용실 도구가 없는 셈이다.
우연이 아니다. 고객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날 때에 대비한 교도소 측의 사전 주의 조치다. 특정 상황에서 가위는 순식간에 치명적인 흉기로 둔갑할 수 있다.
이곳의 기술자들은 짧은 숏컷인 픽시컷과 보풀머리, 애교머리, 층층머리 등 다양한 머리 스타일을 가위 없이 전기 이발기만으로 만들어낸다.
‘사회’에서 머리방은 여인네들의 수다방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의 화제는 교도소라는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음식에 관한 잡담은 구내 카페테리아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카페테리아에서 부리토와 치킨너겟, 타말 파이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번 주의 핫토픽이다.
여성들은 어디서나 샤핑에 관심이 많다. 교도소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이 역시 매주 한 번 화요일마다 문을 여는 구내매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녀에 대한 대화 내용도 늘 거기서 거기다. 아이들의 나이가 몇 살인지로 시작해 “보고 싶다”는 말로 끝난다.
미래에 관한 화제는 단 하나 뿐이다. 아무개가 언제 출소한다는 게 전부다.
재소자들은 날씨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루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날씨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할 말이 없으면 날씨를 화두로 삼는 일반인들과는 처한 상황이 조금 다르다.
미용실의 일손들은 왕년에 솜씨자랑께나 하던 전문가들이다. 리틀 바두년은 라캬나다 플린트리지에서 제법 입소문이 난 헤어드레서였다. 그녀에게 머리를 자르기 위해 고객들은 최소 45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스테파니 메디나와 진저 곤잘레스, 엘리자베스 브람브리아 등 다른 세 명의 동료들도 커트만 해주고 60달러 이상을 챙기던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LA카운티 여성 교도소인 린우드 소재 센추리 리저널 디텐션퍼실리티의 재소자들은 돈을 내지 않는다. 완전 공짜다. 단 금요일은 예외다. 금요일의 손님들은 1인당 5달러를 내야 한다. 팁은 별도다.
피코 리베라에서 조그만 미용실을 운영하던 곤잘레스(29)는 만기 출소하면 자녀들이 기다리는 친정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마약사범으로 체포돼 죗값을 치르고 있는 곤잘레스는 “내가 평소 좋아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도 빨리 가고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용실은 늘 손님들로 붐빈다. 이곳은 재소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공간이다. 블로우 드라이어는 교도소 내에서 오직 여기에만 있다. 구내 매점에서 판매하는 샴푸와 달리 머리방의 세제품은 거품이 잘 인다. 머리방을 한 번 거쳐 가면 한동안 때깔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아무나 미용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약을 하고 머리손질을 받는 특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규칙위반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징계조치를 받으면 예약은 자동적으로 취소된다.
머리방의 위력은 만만치가 않다.
언제 어느 곳에 있건 여성은 외모에 민감하다. 단정하게 머리손질을 한 여성은 심리적으로 여유로워지고, 한층 명랑해진다. 외모 개선으로 자신감이 한층 업그레이드 된 탓이다.
머리를 가다듬은 기결수들은 행동거지도 가지런해 진다. 툭하면 상대방의 머리채를 붙잡고 드잡이 질을 하던 왈패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얌전해진다. 상대에게도 손이 있고, 잔뜩 맵시를 낸 내 머리채도 잡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때문일 터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는 함부로 나대지 않는 법이다.
교정당국이 이 같은 사실을 놓칠 리 없다. 교도소 운영을 책임지는 마리아 구티에레즈가 머리방을 적극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머리를 꾸미고 감방으로 돌아간 복역수들은 너나없이 모범수처럼 행동한다.”
린우드 교도소의 미용실은 2013년 8월 문을 열었다. 민간 헤어케어 전문업체인 ‘폴 미첼’과 ‘베이비리스’가 기증한 1,000달러와 LA카운티 재소자 복지기금이 제공한 지원금이 종자돈으로 사용됐다.
미용실 전체 관리는 브렌다 레젠디즈가 담당한다. LA카운티 셰리프국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헤어스타일리스트로 활동했었다.
옥사밖에 위치한 머리방에는 염색이나 스트레이트 퍼머 등 화학적 처리를 할 만한 공간이 없다. 그래도 네 명의 스타일리스트들은 화학약품 없이 전기 고대기만을 이용해 맵시 있는 머리모양을 만들어준다.
교도소에서는 외모에 변화를 주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죄수복 대신 다른 옷으로 바꿔 입을 수도 없고, 늘 고여 있는 듯한 시간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방법도 달리 없다.
그나마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머리모양 뿐이다. 따라서 여성 재소자들에게 머리손질을 하는 날은 출소 일에 버금갈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에서는 ‘고객이 왕’이 아니다. 오히려 미용사들이 손님들로부터 여왕대접을 받는다.
마약관련 혐의로 각기 3~4년 형을 선고받은 4인의 옥중 미용사들은 특별 옥사에 분리 수용된 정신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정기 출장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들이 미용기구를 실은 카트를 끌고 특별 옥사 감방 복도에 나타나면 신기하게도 적지 않은 재소자들이 제정신을 되찾곤 한다.
린우드 여성전용 교도소의 머리방은 직업교육 시설로도 활용된다. 상당수의 복역수들은 출소 후의 취업에 대비해 이곳에서 이용기술을 익힌다. 훈련생들은 서로 돌아가며 상대의 머리를 손질해 준다. 어느 정도 솜씨가 붙으면 ‘머리방 4인방’을 돕는 보조역할을 맡기도 한다. 물론 예약손님들은 이들을 철저히 피하려 든다.
요즘 린우드 여성 교도소 입소자들 사이에서는 머리털 기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이 내놓은 머리타래는 가발로 제작돼 항암치료를 받느라 머리털이 다 빠진 아동 암 환자들에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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