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라셸 길모어)와 생쥐(크리스토퍼 레밍스)가 어린 쥐들로 분한 어린이 코러스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 <사진 Mathew Imaging>
■ LA필 초연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멋진 ‘홈커밍’이었다.
지난 주말 이틀간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공연된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는 경이와 환상, 마법과 다크 유머가 비빔밥처럼 맛있게 뒤섞인 한편의 잔칫상 같았다. 이렇게 중요한 작품이 이제야 LA에서 초연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고, 굉장히 큰 프로덕션이어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아쉬워진다.
원래 작품을 위촉했던 LA 오페라가 아니라 LA 필하모닉에 의해 초연된 것도 처음에는 좀 의아했으나 결과적으로 LA 필의 음악적 파워가 아니었으면 이만한 성공을 거두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진은숙은 진정 천재인가 보다. 그는 이 한편의 오페라에서 바로크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언어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음악적 상상의 나래를 거침없이 펼쳐낸 걸작을 빚어냈다. 연주와 공연, 프로덕션의 여러 가지 난해함 때문에 2007년 초연된 이래 자주 공연되지 않고 있지만 이 오페라는 21세기 초의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지난 번 인터뷰에서 진은숙은 “음악을 거울의 방처럼 사용했고 역설과 블랙 유머가 상당히 많다. 루이스 캐롤의 책은 패러디와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으로 가득한데 거기 나오는 풍자와 단어게임, 말장난 같은 것의 음악적 유사성을 찾아내려 애썼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수수께끼처럼 복잡한 스토리를 듣기 편하고 익살스러운 음악으로 풀어내려 했다. 현대음악은 진지하고 어렵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유머와 익살, 아이러니, 패러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도 했고 “고도로 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단순하고 청중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는데 그 모든 의도를 제대로 구현시킨 작품이었다.
하나하나 톡톡 튀는 악기들의 운용, 소란 떠는 음표들의 신비하고 섬세한 색깔, 다양한 타악기의 출동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하며 오페라를 아름답고 찬란하게 채색했다. 그만의 독창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은 순간순간 전율을 느끼게 했는데, 그 새로운 음악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LA필하모닉과 멋진 조련사처럼 지휘한 수산나 말키의 솜씨는 정말 경이로운 것이었다.
디즈니 홀을 재미난 환상의 세계로 만들어놓은 네티아 존스(감독/디자인/의상/비디오)와 랠프 스테드만의 과장된 일러스트레이션이 큰 효과를 발한 무대였다. 거대한 스크린이 비딱하게 설치된 무대를 배경으로 출연자들은 오케스트라의 앞과 뒤와 단원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쳤다. 특별히 앨리스 역의 라셸 길모어는 소녀처럼 맑고 높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수많은 음과 말의 유희를 넘나들며 완전한 앨리스로 환생해 청중들의 넋을 빼놓았다.
15명의 가수들이 31개 역할을 중복 출연해 노래했고(윤기훈도 3개 역을 맡아 호연했다) 합창단과 어린이 코러스를 포함해 의상만 100벌이나 됐다고 한다. 이 프로덕션은 고스란히 8일 런던으로 옮겨가 바비칸 홀에서 영국 초연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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