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부인 로지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관쿤 유.
수잔나(프리티 옌데)와 피가로(니콜라 알라이모)가 결혼식에서 춤을 추고 있다.
[공연리뷰] LA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A 오페라가 ‘피가로 3부작’으로 기획한 마지막 작품 ‘피가로의 결혼’(Marriage of Figaro)이 지난 21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개막됐다.
‘피가로 3부작’은 프랑스 작가 보마르셰가 피가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쓴 3개희곡을 각각 다른 작곡가들이 오페라로 만든 작품들을 말한다. 1부가 ‘세비야의 이발사’(The Barber of Seville), 2부가 ‘피가로의 결혼’, 3부가 ‘베르사이유의 유령들’(The Ghosts of Versailles·원제는 ‘죄많은 어머니’)인데 이번 기획에서는출연 가수들의 스케줄 문제로 순서가 뒤바뀐 상태로 공연됐다.
세 작품을 모두 본 소감은 세 오페라 모두 화려하면서도 안정된 연출로 만족도가 높았다는 것과 핵심 주역을 제외한 몇몇 출연자들이 오페라마다 계속 등장해 3부작의 일관성을 살린 점, 출연 가수들의 고른 호연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완성도가 특별히 훌륭했던 점을 들 수 있겠다. 특별히 LA에서 초연된 존 갈리아노의 ‘베르사이유의 유령들’은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뒤섞인 현대의 그랜드 오페라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본 작품이다.
‘피가로의 결혼’은 지난 230년간 가장 많이 공연되고 가장 인기 있는 명작 오페라의 하나로 사랑 받아왔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니만큼 음악이 얼마나 좋은가는 새삼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LA 오페라도 이 작품을 3~4년마다 한 번씩 무대에 올려왔는데, 특히나 이안 저지(Ian Judge)가 만든 이 프로덕션은 세트와 의상이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연출이 깔끔해서인지 2004년과 2006년, 2010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 공연이다.
하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자기 주인인 귀족을 골탕 먹이는 내용의 ‘피가로의 결혼’은 오랫동안 코믹 오페라의 진수로 사랑 받아왔지만 모차르트가 처음 이 작품을 썼던 1778년에는 귀족사회를 풍자한 무엄하고 불온하며 ‘비도덕적인’ 오페라라 하여 루이 16세가 공연을 금지시킨 바람에(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나온다) 6년 후에야 초연될 수 있었다. 역사가들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보마르셰가 쓴 이 작품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려 11명에 달하는 솔리스트들이 나오는 앙상블 오페라로서, 피가로와 수잔나, 알마비바 백작과 백작부인 로지나, 케루비노와 바바리나, 바르톨로와 마르첼리나 등이 쉬지 않고 번갈아 등장하여 수많은 노래들을 불러대는 이 공연은 아름다운 아리아와 음악의 성찬이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가수는 로지나 역의 중국 소프라노 관쿤 유(Guanqun Yu)로서, 나는 이 똑같은 문장을 바로 한 달반 전 ‘베르사이유의 유령들’ 리뷰에서도 쓴 적이 있다. 그때도 로지나 역을 맡았던 그는(역의 비중은 훨씬 작았다) 이번엔 확실한 주역으로 나와 그녀만의 윤기 나는 목소리를 풍성하게 들려줌으로써 수차례 환호와 갈채를 받았다. 그녀의 실크처럼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목소리는 리릭 소프라노 중에서도 단연 특출한데, 동양인으로서 어떻게 그처럼 아름다운 소리와 음색, 성량을 가졌는지 놀라울 뿐이다. 오페라 가수로 대성할 재목이다.
수잔나 역의 프리티 옌데(Pretty Yende) 역시 이번 공연에서 크게 기대를 모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소프라노로, 2년 전 ‘카르멘’에서 미카엘라 역으로 나왔을 때부터 주목받았던 가수다. 그는 관쿤 유와는 다른 음색의 레제로 소프라노로서 유감없이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아마 ‘피가로의 결혼’ 공연 사상 흑인 여성이 수잔나를, 동양 여성이 백작부인 역을 맡은 일은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 다행히(?) 인종의 벽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어 커튼콜에서 일동 기립박수를 받았다. 바바리나 역의 박소영 역시 탄탄하고 수려한 노래와 연기를 선보였다.
남은 공연은 26일 오후 7시30분, 29일 오후 2시, 4월4일과 9일 오후 7시30분, 12일 오후 2시. www.laopera.org, (213)972-8001
<정숙희 기자>
<사진 Craig T. Mathew/LA Op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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