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없이, 필름 없이 인화지…
▶ 미 콘템포러리 작가 7명의 탐험
크로모제닉 인화지에 원형 스핀으로 스크래치를 내서 만든 마르코 브루어의 작품(2008년).
오래된 젤라틴 실버 프린트 인화지를 현상액에 담근 각도와 시간만으로 풍경화를 만들어낸 앨리스 로시터의 작품(2013).
■ 게티 센터 ‘사진의 재발명’전
사진의 역사는 실험과 도전으로 이루어져 왔다. 빛을 모아 필름에 상이 맺히게 하고, 이것을 현상과 인화를 거쳐 만들어내는 사진은 그 과정의 민감성과 수많은 변수로 인하여 예술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사진으로 남기도 했다. 지금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는 포토샵이 그 모든 일을 쉽고 간단하게 대신해 주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사진작가들에게 있어 암실은 작품의 완성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암실, 다크룸의 실험과 도전은 21세기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암실작업을 본적도 해본적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대포만한 디지털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며 사진작가 행세를 하고 있는 동안 소수의 탐험가들은 아직도 필름과 인화지와 현상액, 아니 그 이상의 재료들과 싸우며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게티센터가 4월14일부터 9월6일까지 열고 있는 ‘빛, 종이, 과정: 사진의 재발명’(Light, Paper, Process: Reinventing Photography)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7명의 콘템포러리 사진작가들이 탐험한 사진의 다양한 물성을 보여주는 전시다.
이들은 카메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직접 만든 카메라를 쓰기도 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인화지, 유독성 화학약품이나 침과 땀 등 체액을 사용한 기법 등 기상천외한 실험과 도전으로 특별한 작품을 창조하고 있다. 일부러 흑백과 컬러 인화지를 바꿔 이미지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잘게 찢거나 긁거나 두드려서 특별 효과를 내는 등 오랜 노력과 열정의 소산물이면서 또한 실수와 사고, 우연과 운에 의해 얻어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앨리슨 로시터(Alison Rossiter)는 여기저기, 이베이 같은 데서 수집한 오래된 인화지와 현상액만으로 암실에서 미니멀리즘 같은 작품을 만들어낸다. 유효기간이 수십년씩 지난 흑백 인화지를 현상액에 여러 각도로 담갔다 꺼내 생기는 이미지는 그대로 추상예술이 된다.
마크 브루어(Mark Breuer) 역시 카메라와 필름 없이 작업한다. 인화지를 긁고 마모시키고 태워서 감광제를 없앤 다음 그 상처와 흔적을 이용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거친 재질과 물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훌륭한 작품이 된다.
크리스 매카우(Chris McCaw)는 자기가 만든 카메라에 필름 아닌 인화지를 집어넣고 렌즈를 태양을 향해 정조준하여 태양의 궤적을 따라간 ‘선번’(Sunburn) 시리즈를 보여준다. 카메라의 위치와 날씨, 노출시간에 따라 태양이 지나간 자리는 돋보기 구실을 하는 렌즈를 통해 점과 선과 원의 형태로 그을음을 남겨 나중에는 인화지에 굵고 긴 직선이 남게 된다.
매튜 브랜트(Matthew Brandt)는 식염지, 수지크롬산염 종이, 헬리오그래프 등 다양한 종이를 인화지로 사용한다. 여기에 자기가 찍은 이미지에 연관된 체액 즉 침, 땀, 정액, 호수 물 등의 액체를 현상 과정에 섞어보면서 만들어낸 특이한 작품들을 보여준다.
7인의 개인전처럼 쇼룸을 분리해 보여주고 있는 이 전시는 이외에도 제임스 웰링(James Welling), 리사 오펜하임(Lisa Oppenheim)의 독창적인 작품들도 소개하고 있으며 게티가 소장한 20세기 사진 거장들의 비슷한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입장료 무료. 월요일 휴관. 파킹 15달러. www.getty.edu
Getty Center 1200 Getty Drive LA, CA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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