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지인을 따라 무료배식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오후 5시 배식을 위해 오후 2시부터 한 성당에 모여 야채와 고기 등 비빔밥 재료들을 볶아 각각 통에 담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을 마지막으로 통에 옮겨 담고 배식 장소로 이동했다. 막연히 홈리스가 많이 사는 어느 동네의 성당이나 교회 앞마당이려니 생각했는데, 도착한 장소는 외관부터 달랐다. 텐트 시티3에 도착한 것이다.
텐트 시티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로, 홈리스들이 공터에 무허가 텐트를 치고 지내는 것과 달리, 합법적으로 허가받은 장소에서 허가받은 인원만큼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노숙에 비해 안전하고 쉘터에 비해 자유로워, 텐트 시티 생활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텐트 시티는 전국적으로 많지 않다. 또한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철거되기도 한다. 시애틀의 경우 텐트 시티 1과 2는 예전에 철거되어 텐트 시티 3가 유일하다.
모기지 대란과 취업난, 그리고 갈수록 높아지는 물가 압박 등에 몰려 텐트 생활을 선택했을 이들의 보금자리로 발을 내딛었다. 텐트 시티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전형적인 홈리스처럼 보이고, 또 다른 이들은 텐트 생활을 할 거라고는 생각이 안될 만큼 말쑥했다. 깨끗한 옷, 적당한 장신구, 매너 있고 여유로운 인사의 말.
어느 정도 배식이 마무리되고 텐트 시티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초입에는 군용 막사 같은 큰 텐트들이 있었다. PC방, 매점, 잡화점 역할을 하는 공용시설이었다. PC방 텐트 안에는 데스크탑이 6대 정도 있고 몇몇 사람이 여유롭게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매점 텐트를 들추자 얼기설기 상자를 쌓아 만든 선반에 과자, 음료수, 통조림캔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지막 잡화점 텐트 안에는 칫솔, 손세정제, 담요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기대 이상으로 잘 정비된 시설에 감탄하고 있을 때 주민 한 사람이 자신의 텐트를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군용 막사 같은 커다란, 여러 명이 섞여 자는 커뮤니티 텐트들을 지나 뒤쪽으로 가니 크고 작은 개인 텐트들이 수십개 있었다. 마치 멋진 캠핑장 같은 풍경이었다. 그의 텐트 안에는 퀸 사이즈 에어 메트리스가 놓여 있었고 작은 테이블 위에는 맥북이 놓여있었다. 정말 멋진 텐트라고 칭찬하자 그는 ‘우리는 홈리스와는 달라’ 라고 말했다.
그곳에서는 이제 막 한살이 된 사내아기가 5번째 아이를 밴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기는 큰 나무 밑에 놓인 요람에서 시원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고, 요람 옆에는 어느 봉사단체에서 보낸 생일 축하 헬륨풍선이 떠 있었다. 아기 엄마에게 첫째 둘째 셋째는 어디 있느냐고 했더니 외할머니와 시내에 나갔다고 했다. 넷째 아기의 첫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자 그녀가 밝게 웃었다. 그 밝은 웃음이 조금 시렸지만 나도 밝게 마주 웃어주었다.
텐트 시티에서는 적당한 규율이 지켜지고 있었으며, 쓰레기 수거도 잘 되고 있었다. 화려한 텐트를 지닌 사람과 누추한 텐트를 지닌 사람이 있고, 멍 하니 시간을 때우는 사람과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텐트 시티를 떠나올 때 ‘칫솔과 손세정제가 떨어져가니 기부가 필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들의 현실적인 문제가 다시금 눈에 밟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봉사활동은 나 자신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관성의 법칙처럼 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직장에 나가 일하고, 월급 받고, 세금 내고 … 그렇게 생활을 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가끔은 지치기도 하지만, 그런 일상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새삼 감사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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