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니 스키키’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공연하고 있다.
【공연리뷰 - LA 오페라 30주년 시즌 개막작】
도밍고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멋있을 건가. 내년 1월이면 75세가 되는 노인이 이래도 되는 건가.
젊은이들보다 더 활기차고 윤기 나게 노래하는 것은 물론이요,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열정적으로 소화해내는 오페라의 거장. 그가 나오면 언제나 무대는 빛이 나고 공연은 천상의 것이 된다. LA 오페라 30년 역사의 영웅인 그는 이미 등장하면서부터 환호와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남가주 팬들에게는 절대적이며 신화적인 존재, 12일 LA 오페라의 30주년 시즌 개막공연은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의 밤이었다.
이날 푸치니의 ‘잔니 스키키’(Gianni Schicchi)에서 주역을 노래한 도밍고는 함께 출연한 10여명의 가수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노래, 연기, 카리스마에서 압도적인 공연을 보여주었고, 이어 인터미션 후 공연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Pagliacci)에서는 지휘를 맡아 오케스트라를 일사불란하게 이끌며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잔니 스키키’는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도밍고의 권유로 2008년 연출한 첫 오페라 프로덕션으로, 곳곳에서 우디 앨런의 블랙 유머와 위트, 짓궂은 농담이 튀어나오는 유쾌한 풍자 코미디다. 피렌체의 한 부자가 죽고 나서 유산을 둘러싼 일가친척들, 죽음을 애도하기는커녕 유산에만 관심 있는 인간 군상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여기서 교활한 주인공 잔니 스키키로 출연한 도밍고는 그가 처음 맡은 역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공연을 보여주었다. 또 유명한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를 소프라노 안드리아나 처크맨이 아주 잘 소화해 박수갈채를 받았고, 공증인 역으로 출연한 바리톤 윤기훈의 공연도 노래와 연기 모두 대단히 흡족한 것이었다.
이어 인터미션 후 공연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Pagliacci)에서 도밍고는 오케스트라를 일사불란하게 이끌며 깊고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그가 지휘하는 공연을 여러 번 들어보았지만, 이번처럼 무르익고 아름다운 연주는 처음이었다. 한 무대에서 주역으로 노래도 하고 연달아 지휘를 맡은 일도 아마 오페라 역사상 처음이니 이번 공연은 여러모로 기록적이라 하겠다.
‘팔리아치’의 음악은 굉장히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드러매틱한 데다 마지막에 비극을 향해 치닫는 추진력은 관객들을 긴장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데 도밍고는 그 극적인 음악을 마치 노련한 조련사처럼 완벽하게 연출해내 오페라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도밍고는 생존하는 사람 중에 오페라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 것이다. 거의 150개를 헤아리는 주역을 소화해낸 그는 전 세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극장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케스트라와 수많은 지휘자의 연주에 맞춰 노래해 왔다. 그러니 그 자신 만큼 극장과 오케스트라와 음악과 가수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가 20여년 전 공연한 ‘팔리아치’의 카니오 역은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공연으로 남아 있으며, 10여년 전에는 프랑코 제피렐리(이번 오페라 프로덕션 연출자) 감독과 함께 영화 버전으로 만든 것이 유명하다. 그러니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위와 아래와 밖에서 그의 모든 경험이 녹아 있는 연주를 들려준 것이라고 본다.
오페라의 전설 도밍고가 우리 앞에서 노래할 때 한 번이라도 더 들어두는 것이 좋겠다.
남은 공연은 17일과 24일 오후 7시30분, 20일과 27일 오후 2시, 10월3일 오후 7시.
www.laopera.org, (213)972-8001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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