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제 박사가 피아니스트 길예은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용제 박사 팔순 축하 콘서트
참 아름다운 음악회였다. 좋은 음악회를 많이 다녀봤지만 한 사람의 여든해 인생을 음악과 함께 조명한 이처럼 뜻깊은 연주회는 처음이다.
18일 드림홀에서 열린 바이올리니스트 김용제 박사의 80세 생일축하 콘서트는 좋은 음악과 옛 친구들이 한데 모인 즐거운 파티였다. 무엇보다 김용제 박사의 연주는 기립박수가 나올 만큼 멋진 것이었고, 피아니스트 에스더 길과의 수려한 협연이 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안과의사 닥터 김이 수준급 바이올린 연주자라는 것과 클래식 음악에 대해 누구보다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80세 나이에 그처럼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으리라고는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 바이올리니스트의 수명이 피아니스트보다 짧은 이유는 손가락 부상이 잦기 때문으로, 고령에 그처럼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마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이날 김용제 박사의 연주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물론 그가 프로 뮤지션이 아닌만큼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한 마음과 연륜이 담긴 ‘살아있는 소리’였다. 닥터 김은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다섯곡에 대해 매번 자신과의 특별한 스토리를 들려준 후 연주했는데 그것이 무척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사연들이었다.
처음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나타 1번은 그가 60년전 미국 유학을 떠나기 전날밤 연주했던 곡이라 했다. “그때는 쉬운거 같았는데 지금은 상당히 어렵네요”라는 코멘트를 통해 그가 나이 어린 스무살 시절부터 얼마나 숙련된 연주가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고전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곡은 3악장에서 바이올린의 화려한 변주가 강렬한, 쉽지 않은 곡인데 무리 없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치열한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연주곡 쇼스타코비치의 ‘로맨스’는 큰딸이 자기 결혼식에서 연주해달라고 했던 곡이라며 딸과 사위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연주했고, 세 번째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은 워낙 유명한 바이올린 곡이라 부담이 컸을텐데도 유려하고 아름다운 솜씨로 멋지게 연주했다. 네 번째 글루크의 ‘축복받은 영혼의 춤’은 아내에게 맨 처음 들려준 곡이라며 오랜 세월 자신의 곁을 지켜주고 헌신한 아내에게 바치는 사랑을 담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김 박사가 40년전 바이올린의 전설 아이작 스턴의 콘서트에 참석해 처음 들었던 곡이라며, 선생이 어렵다고 안 가르쳐주는걸 혼자 연습해 익혔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조화와 충돌을 계속하며 함께 신비스런 길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음악을 닥터 김과 에스더 길은 나무랄 데 없는 호흡으로 들려주었다.
앵코르 요청이 쏟아지자 닥터 김은 새로 배운 곡이라며 차이코프스키의 ‘멜로디’를 연주했다. 아직도 새로 배우고 연습하는 노익장에 모두들 큰 감동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100명이 초청된 이날 음악회에는 1980년대 남가주 한인 음악계에서 함께 활약했던 클라리네티스트이며 ‘나성 심포니’의 지휘자 임춘원씨 부부와 ‘나성 트리오’를 조직해 활동했던 첼리스트 이방은, 피아니스트 길미향씨도 참석해 뜻깊은 연주를 감상했다. 이날 협연한 길예은이 바로 길미향씨의 딸이니 김박사는 2대에 걸쳐 ‘미녀 모녀’ 피아니스트와 협연한 행운의 바이올리니스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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