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모임이 한창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창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다음날 열린, 나와는 직접 인연이 없는 해병전우회 모임에는 객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이 단체의 송년 모임을 준비한 선배의 권유가 강했다. 5인조 밴드가 나오고 뭔가 좀 색다른 파티가 될 거라고 했다. 다른 연말 파티와 해병전우회 모임은 단체의 성격이 다른 만큼 분위기부터 다르다. 여기저기 해병 복장을 한 회원 모습이 보이고 군 출신 모임답게 ‘필승’ 경례도 예상대로여서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그 선배가 보여주고 싶었던 건 따로 있었다. 사회를 본 형수의 재치 있는 진행을 보여주자는 건 물론 아니었고 초대할 때 강조했던 밴드도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차별화할 만한 건 또 아니었다. 여흥 순서 도입부에 짧게 토크 콘서트가 마련되어 있었던 게 눈길을 끌었다. 지루하기 십상이어서 반기지 않는 이도 있겠지만 이 순서는 느낌이 달랐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회원 2명이 차례로 소개됐다. 위스컨신 그린베이에서 미국 감리교회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는 김기성목사와 이날 행사의 제반 경비 대부분을 부담했다는 강위종 이사장이 주인공이었다. 강위종 이사장의 토크 내용을 조금 소개해야겠다. 그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해병 선배 정차곤씨를 따로 찾아 경례를 올렸다. 30년이 넘은 오래 전 그가 시카고에 왔을 때 도움을 받은 인연 설명이 이어졌다. 먹고 잘 곳이 없어 한 달여를 고생하다 한국으로 돌아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타국에서 고생하지 말고 한국에 와서 어미랑 함께 살자’는 기대했던 답변과는 달리 범상치 않은 질책이 돌아 왔다. ‘네가 축구를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었니, 공부를 열심히 잘했니, 올 생각 말고 그 곳에서 더욱 열심히 살아봐라.’ 그 때 그의 손을 잡아준 이가 당시 바디샵을 운영하던 정차곤씨 였다는 얘기다. 해병 전우의 동지애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송년모임 다음 날 전우회 쪽으로 부터 들은 얘기로 강 이사장은 이후 택시 운전을 시작했고 하루 4시간밖에 자지 않으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고생 끝에 수십 대의 시카고 면허 택시를 운용하게 될 만큼 성공한 사업가가 된 그는 수년 전 택시를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상당한 재력가로 알려진 그는 어려운 시절 자신을 도와준 해병 전우를 위해 이런 저런 모임 경비를 대는 걸 도맡다시피 했다. 해병전우회 말로는 한인사회의 대소사에 등장하는 해병 의장대의 휘장과 복식 등에 들어가는 비용도 모두 그가 댄다고 한다.
개인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날 행사 준비 책임을 맡았다는 선배의 뒷얘기다. 밴드의 연주곡과 테이블 위의 와인이 나는 좋았는데 해병 회원 중에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노래가 너무 최신곡(?)이라는 말과 소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나 보다. 둘 다 이해가 간다. 양식에는 와인이 어울렸지만 뒤 이어 나온 홍어회 무침과 족발에는 소주가 제격이겠고 ‘거위의 꿈’이라는 가요도 듣는 이에 따라 최신곡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긴 30대에서 80대까지로 구성된 회원의 취향을 다 맞추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네 송년 모임은 대체로 비슷하다. 동창회나 향우회 연말 파티마다 세대간 취향이 크게 달라 준비하는 측에서는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을 추구하는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 회원들의 송년 모임은 해마다 이어진다. 그 이유는 와인과 소주의 차이를 밀쳐내는 동류의식에 있다.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함께 여기서 살아가고 있음을 즐기고 감사한다. 강 이사장 처럼 특별한 인연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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