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영화 ‘귀향’이 개봉 5일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단다. 제작비가 없어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14년이 걸렸다는 영화,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일반인들이 십시일반 제작비를 지원했다는 영화가 말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윤동주 시인의 삶을 다룬 흑백영화 ‘동주’도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이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는 호평을 받으며 선전하고 있다.
어느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학생들을 관람하게 했는가 하면, 한 영화 평론가가 “역사에 대해서는 울분이 나게 하지만 영화는 그닥…”이라고 비평하자 많은 사람들이 “작품성만으로 평가될 수 없는 고귀한 이야기”라며 맹렬하게 반대 의견을 펼쳤다는 기사도 보인다.
영화 리뷰만 봐도, 관련 기사만 봐도 눈물이 나는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하는 그룹은 놀랍게도 20-30대 여성이다. 영화 평점에 가장 많이 참여하고 점수도 가장 후하게 줬을 뿐 아니라 실제 이 두 영화는 관객의 30% 이상이 20대와 30대의 여성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귀향’에 인기 스타 한 명 나오지 않고 ‘동주’ 역시 저예산의 흑백영화라는데 이들 여성 관객이 일제강점기 소재의 영화에 마음을 내준 이유는 뭘까.
젊은 여성들은 원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다. 내 대학시절에도 운동권에서 한가닥 하시던 언니(?)들은 대단했다. 현재 20대 여성들은 10대 시절 ‘촛불소녀’ ‘월드컵 태극기 세대’ 등으로 주목받았던 세대이기도 하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귀향’과 ‘동주’는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와 별개로 젊은 세대가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역사 의식을 갖고 있다면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식으로 인식되고 있고 20-30대 여성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기존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주로 독립운동가들을 내세워 카타르시스를 줬던 것과는 달리 비극적 역사 때문에 희생된 평범한 개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스토리가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불렀을 수도 있다. ‘귀향’의 주인공은 속수무책으로 끌려간 힘없는 10대 소녀들이며 ‘동주’ 속 윤동주는 선량한 문학도인데 일제의 핍박을 받는다.
일제 강점기에 아무 잘못 없이 희생됐던 젊은이들과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스토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세상이 불합리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20-30대 여성들이 많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관객들도 대부분 이들이다. ‘귀향’의 엔딩 크레딧은 제작비를 후원한 7만5,000여명의 이름이 빼곡하게 채워져 무려 10여분에 이른다. ‘동주’의 엔딩 크레딧에 윤동주와 그의 사촌인 송몽규의 연보가 함께 자막에 올라가는 순간까지 스크린을 응시하며 함께 흐느끼는 관객들도 바로 이들이다.
‘귀향’을 만든 조정래 감독은 인터뷰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동안 할머니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장례식 갈 때마다 마음은 급하고 돈도, 이름도 없는 내가 너무 초라했다. 그런 나를 지지해준 아내, 늘 곁을 지켜준 후배 감독, 그리고 12억 원을 모아준 국민들, 재능 기부에 가까운 노고를 해준 배우들과 스탭들, 전부 기적과 감사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동주’의 이준익 감독은 상업광고나 협찬광고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과감히 거절하고, 적은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개봉 자체가 버거웠다던 ‘귀향’과,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스크린을 확보한 ‘동주’의 흥행은 그래서 기적이 아닌 관객들의 응원이고 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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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조 마케팅 컨설턴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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