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알파벳의 첫 문자인 알파(Alpha)는 그 어원 때문에 ‘시작’이나 ‘첫 번째’ 혹은 ‘최고’ 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종종 쓰이곤 한다. 지난달 이세돌 9단과 흥미진진한 게임으로 주목을 받았던 컴퓨터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 역시 그런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범위한 자료와 계산력을 바탕으로 ‘머신 러닝’ 혹은 ‘딥 러닝’을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이 프로그램이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리는 바둑 한 게임을 이길 때마다 언론은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다.
개발자는 인공지능이 인류를 보다 풍요롭게 할 것이라 했지만, 각 분야 전문가들은 저마다 인공지능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우려와 기대를 표명했다. 보다 개인적인 의견이 피력되는 온라인상에서도 각 분야의 지인들이 어찌나 흥미로운 글을 포스팅하는지 바둑을 전혀 모르는 나는 게임자체보다 그 글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떤 지인은 기계에게 계속 지는 인간을 보며 무력감을 느껴 술을 한잔 걸쳤다 하고, 또 다른 지인은 데이타 전문가로서 어떻게 ‘머신 러닝’이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기도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저 구글이 시도한 여론몰이성 이벤트에 이세돌 9단이 동원된 것뿐이라고도 했다. 바둑의 ‘즐거움’을 모르면서 게임만 이기는 기계가 어찌 인간과 비교될 수 있겠느냐며 본인은 인간인 게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의견 또한 있었다.
인공지능이나 머신 러닝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 역시 양적인 자료를 분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알파고가 대충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대한 자료가 주어지고 계산력이 받쳐준다면 정해진 옵션들 중에 (바둑판은 정해져 있으므로) 어떤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승률을 높이는지 계산해 내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규칙과 공간이 한정적이라면 정보와 계산력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런 기계를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알파고 입장에서 매번 두 개 이상의 옵션이 (바둑에서는 이 옵션을 ‘수’라고 부르지만...), 거의 동일한 확률로 최고의 옵션이라고 계산되도록 판을 짜가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머신 러닝’이라고 불리는 알고리즘과 함께 기계들이 점점 똑똑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자로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정작 인간은 그렇게 기계처럼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계는 자료와 확률로 배우지만, 인간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배우고 다른 방식으로 결정한다. 물론 공통적인 부분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이미지 자료에 강하고, 어떤 사람은 청각 자료에 강하고, 또 다른 사람은 활자에 강하며 이들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게다가 인간의 의사 결정은 항상 확률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확률에 의존했다면 수많은 인간의 발명품은 지금쯤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정해진 바둑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종종 새로운 장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알파고 같은 기계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알파고를 둘러싼 인간들의 ‘다양한’ 의견과 ‘다른’ 수준의 우려와 기대에 대한 논의들이 사실은 기계가 인간 고유의 다양한 특수성을 가지려면 아직은 멀었음을 보여준다. 그런 특수성을 반영하려면, 어쩌면 인구 수 만큼의 기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대로 밥하는 건 진즉에 쿠쿠 밥솥에게 졌을지 모르겠으나, 누른 밥을 누룽지로 전환시키는 발상은 아직 쿠쿠가 배우지 못했다. 쿠쿠에게 누룽지를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인간은 또 다른 방식으로 탄 밥을 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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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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