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랑랑·조슈아 벨·두다멜…
▶ 단지 인기 드라마 때문 아닌
플라시도 도밍고와 모니카 벨루치가 베니스의 그랜드 카날에서 ‘모차르트 인 정글’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뒤에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서있다.
‘모차르트 인 정글’ 촬영을 위해 한 밤중에 베니스의 그랜드 카날 위를 떠가는 플로팅 무대.
1977년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에 출연한 소프라노 베벌리 실즈.
■ 클래식 스타들 잇단 ‘모차르트 인 정글’ 등장
자정이 넘은 시각, 베니스의 그랜드 카날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물 위에 띄운 무대에서 ‘돈 지오반니’의 듀엣 첫 소절을 노래하고 있다. 모터 달린 무대는 서서히 아카데미아 다리쪽으로 나아간다. 다른 쪽 배에서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이에 화답하며 도밍고 쪽으로 나아온다. 그 배 위에는 여배우 모니카 벨루치가 마리아 칼라스처럼 파란색 드레스에 반짝이는 다이어몬드로 치장한 채 서서 유혹적인 립싱크를 날리며 노래한다. 두 무대가 만나면서 두 사람의 노래 소리도 합쳐진다.
지난 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펼쳐진 이 오페라적 장관은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스마트폰 세례를 받았다. 거장 도밍고가 드디어 인기 드라마 ‘모차르트 인 정글’(Mozart in the Jungle)에 우정 출연한 것이다.
아마존이 만든 이 드라마는 가상의 뉴욕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여자 오보이스트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뒷얘기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동안 세계적인 클래식 연주자들을 카메오로 등장시켜 화제를 모으곤 했는데 그 중에는 피아니스트 랑랑이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함께 탁구를 치는가 하면 피아니스트 엠마누엘 액스와 LA필하모닉의 음악감독 구스타보 두다멜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A급의 클래식 스타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것은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클래식 음악가들이 TV에 출연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도 반영하고 있다. TV는 아직도 새로운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매체인 것이다.
인근 팔라조에서 야간 촬영을 기다리던 도밍고는 “미스 피기와 듀엣을 노래하고 나서 훨씬 더 유명해졌다”고 회상했다. 현재 75세인 도밍고는 1982년 ‘100 스타의 밤’ 프로그램에서 미스 피기(TV 머펫쇼에 나오는 돼지인형)와 노래한 것을 비롯해 ‘심슨네 가족’과 ‘코스비 쇼’ 등의 인기 쇼에 우정출연했고, 그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 스페셜 등을 통해 더 폭넓은 청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그같은 기회는 최근 들어 미디어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엔터테인먼트와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 광고주들이 상품을 판매하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 것이 클래식계의 도전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클래식 열혈 팬들에게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좋은 시기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집에 앉아서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회나 살츠부르크 음악제의 공연들, 비엔나 국립오페라단이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공연 등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클래식 스타들에게는 일반 TV에 출연하는 것이 과거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 음악 교육이 사양길에 있는 요즘, 클래식 음악이 대중 매체와의 거리가 더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1956년 유명했던 ‘에드 설리번 쇼’에 데뷔한 수퍼스타 중에는 엘비스 프레슬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 칼라스도 있었다. NBC는 새로운 오페라를 위촉하기도 하고 중계하기도 했다. 그중에는 지안 카를로 메노티의 ‘아말과 밤에 찾아온 손님’이 있다. 소프라노 베벌리 실즈는 ‘자니 카슨의 투나잇 쇼’의 초대손님으로 나왔을 뿐 아니라 그녀 자신이 게스트 호스트로 활동했다. 메조소프라노 마릴린 혼은 ‘이상한 커플’(The Odd Couple)에 출연하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제너럴 매니저 피터 겔브는 클래식 음악인들의 TV 출연 기회가 줄어들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청중과 소통할 매체를 찾아냈는데 라이브 HD 시네마 동시중계와 소셜미디어의 활용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에만 메트의 비디오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740만명이 시청했다.
예외도 있다. ‘세서미 스트릿’은 아직도 때때로 클래식 뮤지션들을 출연시킨다. 퀴즈쇼 ‘제퍼디’ 역시 문제의 단서를 제공할 때 무용수와 연주자들을 쓴다. 또 ‘더 콜버트 리포트’와 ‘더 레이트 쇼’의 스티븐 콜버트는 발레 댄서와 클래식 음악인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그런 출연 역시 점점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모차르트 인 정글’이 클래식 음악인들에게 차지하는 비중은 이 쇼가 올해 2개의 골든 그로브 상을 차지하자 더욱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모차르트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쇼는 2005년 오보 연주자 블레어 틴들(Blair Tindall)이 뉴욕 필하모닉과 브로드웨이 오케스트라들과의 앙상블을 통해 겪은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저술한 책(Mozart in the Jungle: Sex, Drugs, and Classical Music)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버나뎃 피터스, 말콤 맥도월, 롤라 커크, 제이슨 슈와츠만 등이 주연하는 이 시리즈는 클래식 음악팬들뿐 아니라 클래식을 전혀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도 어필하고 있다. 도밍고가 출연한 에피소드의 감독을 맡은 폴 와이츠는 불특정 다수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음악인이 출연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새로운 세대에게 클래식 음악이 전달됐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입니다. 이렇게 유명한 연주자들이 이 쇼에 출연하는 이유는 달리는 만날 수 없는 청중들에게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멕시코로 이주, 그곳과 특별한 유대감을 갖고 있는 도밍고는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것은 멕시코 배우 가르시엘 베르날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 오페라 계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는 도밍고는 최근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의 주역을 맡아 공연한 직후 자정에 듀엣 곡(Là ci darem la mano)을 녹음했다. 지난 주에는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서 베르디의 ‘두사람의 포스카리’의 도제 역을 노래한 바로 다음날 이곳 베니스로 날아와 ‘모차르트 인 정글’을 촬영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다음 시즌에는 현대 컨템포러리 음악도 선보이게 된다. 젊은 미국 작곡가 니코 멀리(Nico Muhly)가 이 쇼를 위한 아리아를 썼다. 니코 멀리는 그의 오페라 ‘두 소년’(Two Boys)이 2013년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공연된 바 있을 정도로 현대 음악계에서 각광받는 작곡가다.
폴 와이츠는 니코 멀히의 아리아는 그가 이 쇼를 위해 찾고 있던 바로 그 음악이라고 말했다. 우스꽝스럽고 코믹하면서도 숭고한 순간들이 섞여 있는 음악인 것이다.
“완전히 엉뚱하면서도 웃기죠. 이게 바로 내가 찾고 있던 아주 중요한 소리, 실제로 움직이는 음악입니다”
한국일보 -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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