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함께 한 물건·가구
▶ 작은 집·요양원 옮길 때

경매업체를 운영하는 로버트 버만이 닥터 해리슨 로스의 집을 방문해 미술품을 감정하고 있다.

뉴욕의 노인 이사업체 매니저 린다 프랭켈이 고객의 물품들을 리스트에 적고 있다.

곧 80세가 되는 해리슨 로스는 노인 이사 전문가의 도움으로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평생 쌓아온 물건과 가구들을 정리해주는 도우미가 신종 전문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거동이 불편해진 노인들이 작은 집이나 요양시설로 옮겨갈 때 가장 힘든 결정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가느냐 하는 것이다. 평생 살아오면서 추억과 함께 쌓인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감정적인 결정임에 틀림없다.
이사하는 것은 어떤 나이에나 힘든 일이지만 한 곳에서 오래 살아온 노인에게 그 세월동안 축적된 추억의 일부를 버리는 결정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다. 특히 나이 50을 넘어서면 자신의 소유물을 처분하는 일이 더 힘들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신과 의사였던 닥터 필리스 해리슨 로스(80)는 이 과정이 너무도 힘들어서 아예 노인 이사전문 매니저(senior move manager)를 고용했다. 시니어 무브 매니저들은 수많은 물건을 정리해 도네이션하거나 팔아버림으로써 짐을 줄여주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뿐 아니라 타주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도 의견을 조율해 어떤 물건을 없애고 어떤 것을 간직하기 원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생겨난 것은 최근의 일이라 현재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노인이사 매니저들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노인이사 매니저 전국연합의 디렉터 매리 케이 뷔스에 따르면 회원이 2002년 22명에서 현재 1,000명으로 늘었고, 작년 한해 이 회원들이 10만명의 노인들이 이사하는 걸 도와줌으로써 올린 소득은 총 1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닥터 해리슨 로스의 경우 2년전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48년 동안 살아온 어퍼 웨스트사이드의 4베드룸 거주지에서 더 작은 곳으로 옮겨야했을 때 그녀는 소유물을 모두 다 버리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둠으로써 필요할 때 찾아보게 되기를 원했다.
그녀는 친구의 도움으로 많은 물건을 정리했으나 덩치가 큰 물건은 처치 곤란이었고 가구와 미술품을 팔 수 있는 판로도 알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부동산 에이전트가 브루클린에서 ‘페이퍼 문 무브스’(Paper Moon Moves)를 운영하며 노인들의 이사를 도와주는 케이티 허스테드와 조셉 웨스톤 부부를 소개해주었다. 닥터 해리슨 로스는 먼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직접 만나서 신뢰감을 쌓은 후에야 계약에 사인을 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노인 이사 매니저들은 시간당 100달러를 받는데 이는 전국 평균에 비해 꽤 높은 가격이다. 2014년 전국 시니어 무브 매니저 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50% 정도의 회원들이 시간당 41~60달러를 받는다고 말했다.
케이티 허스테드는 고객이 이사할 날짜의 약 6주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객의 집으로 가서 모든 물건을 분류하고 목록을 만든 다음 어떤 것을 자선기관에 기증하고, 어떤 것을 친구나 가족들에게 주어야 하며, 어떤 것을 팔거나 버려야할 지 결정한다. 고객의 새 보금자리에 옮기고 싶은 가구가 있을 때는 아이패드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앱 ‘마크 온 콜’(Mark On Call)을 사용해 고객에게 한정된 공간에서 특정 가구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것을 본 고객들은 자기가 가져가고 싶은 것들이 도저히 다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그녀는 또한 캐비넷과 옷장, 서랍 등을 모두 사진으로 찍어놓음으로써 이사한 다음 짐을 풀 때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다시 정리해놓는다.
노인 이사 전문가들은 감식안이 있어야 한다. 몇천달러의 가치밖에 없는 물건들을 보고 최고 수준의 경매업체에 전화해서도 안 되고 어떤 부동산 청산업자나 쓰레기 운송업자를 불러야할 지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한 고객의 성인 자녀들과도 잘 소통해야 한다. 많은 경우 타주에서 주말을 이용해 날아온 자녀들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하루 빨리 정리하려 서두르는 반면 대부분의 노인들은 하루 3시간 이상은 정리하는 작업을 하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사 매니저들은 이들 사이의 갈등에 중재자 역할도 해야 한다.
값나가는 물건들은 경매하우스나 재산처분 딜러(estate liquidator)들에게 넘겨진다. 경매하우스들은 팔고난 다음 커미션을 챙기고, 재산처분 딜러들은 먼저 돈을 건네고 물건을 가져간다. 예술작품의 경우 그 진위를 증명할 서류가 굉장히 중요하다.
딜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가구는 20세기 중반에 나온 모던 퍼니처들이다. 반면 차이나 캐비넷과 화려한 장식장을 갖춘 다이닝룸 세트는 그 시대 사람들이 열심히 사들인 가구였지만 전혀 팔리지가 않고 자녀들도 원하지를 않는다고 한다. 노인 이사 전문가들은 그 점을 고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에 들어가 얼마나 낮은 가격에 매매되는지 보여주는 일도 한다.
맨해튼의 이사전문 매니저 린다 E. 프랭켈은 언젠가 고객의 책들 중에서 아랍어 필사본을 발견했다. 희귀본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예감대로 그 책은 17세기 후반 오토만 제국에서 나온 쿠란이었고 2014년 런던 소더비에서 5만달러에 팔렸다.
어떤 이들은 현재 살고있는 공간을 잘 활용하며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 이사 전문가를 고용한다. 도널드 판디나(80)와 살 시그나(78) 부부는 브루클린 하이츠의 한 집에서 1978년부터 살아왔는데 물건이 점점 많이 쌓이자 침실 하나를 창고로 사용해왔다. 물건들 중에는 나중에 별장에서 사용하려고 장만했던 것들도 있는데 결국 별장은 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부부는 이사 전문가를 고용해 물건들을 정리함으로써 언제라도 쉽게 이사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전문가를 부른다. 최근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돼 54년간 살던 집을 떠나 병원으로 보내야 했던 딸 프란 오브라이언(52)은 “갑자기 뭘 버리고 뭘 간직해야할 지 결정하는 일이 너무도 어려웠고 혼자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전문가를 고용함으로써 훨씬 쉽게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부가 철학교수였던 관계로 이 분야의 책만 수천권에 달했으나 전문가와 함께 정리함으로써 300여권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말한 오브라이언은 이들의 노하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며 무엇보다 얼마 남지 않은 부모와의 마지막 시간을 짐 싸고 버리는 일에 소비하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사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대개 부동산 에이전트나 관련 변호사들, 노인 거주시설의 직원들을 통해 소개받을 수 있다.
한국일보 -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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