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공원 전력 공급 책임자 케빈 하티간의 애환, 대협곡 전역 전기 홀로 관리, 필요한 곳 부르면 즉각 출동
▶ 헬기로… 걸어… 만능 해결사, 계량기서 방울뱀·벌 만나기도

그랜드캐년 사우스 림에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케빈 하티간. 국립공원 안에서 살면서 전력 시스템에 관계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
그에게는 두 개의 사무실이 있다. 하나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지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억만년 된 바위들이 삐죽삐죽 얽혀 있는 곳이다.
케빈 하티간(Kevin Hartigan)은 애리조나 주에서 가장 큰 에너지 유틸리티 회사 ‘애리조나 퍼블릭 서비스’의 지역 대표(local representative for Arizona Public Service), 그러나 그런 직함보다는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전체의 전력 공급을 책임진 사람이라는 설명이 훨씬 쉽게 어필될 것이다.
전력이 없으면 국립공원 내 물 펌프들은 작동이 중지된다. 물 펌프가 작동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방문객들로 붐비는 공원의 남쪽 사우스 림에서 세면대와 화장실과 샤워룸, 식수대에 물이 끊기면 난리가 날 것이다. 만일 진짜 전력이 중단되면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제가 여기 있는 것이죠. 공원을 계속 오픈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그랜드캐년 내셔널 팍에는 매일 1만여명의 방문객이 미 전역에서, 혹은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다. 하티간은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기도 하고, 수억만년 한 자리에 있어온 바위들이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계속 다른 색깔로 덧입고 빛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다. 마치 화가의 팔레트에서 나오는 붓질과 같다며 그는 매번 감탄한다.
하티간은 원래 피닉스의 유틸리티 회사인 APS의 트러블 슈터였다. 깜빡거리는 가로등 전구로부터 한 지역 전체의 정전사태에 이르는, 전력과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러 다니곤 했다.
6년 전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의 포지션이 나왔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23년간 일하던 사람이 은퇴하면서 주어진 천금의 기회였다.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의 전력 담당자는 당연히 숙련된 기술의 보유자여야 한다. 그러나 기술 문제는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자격요건의 하나일 뿐이다.
국립공원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적응이 빨라야 하고,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능해야 한다. 지역 대표라는 직함은 24시간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무실에서, 주유소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면서, 혹은 곤히 잠든 시각에 이웃이 찾아와 문을 두드릴 때도 그는 일어나야 한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고도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랜드캐년은 바다와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 하티간은 아주 깊은 캐년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럴 때면 노새를 타고 가기도 하고, 직접 도보로 걸어가기도 하며, 허리에 장비를 묶고 도구를 잔뜩 실은 백팩을 메고는 라펠(현수하강)로 내려갈 때도 있다. 공원 림에서 7,000피트 아래 캐년의 밑바닥에 있는 전선을 점검하거나 수리하기 위해서다.
한번 일을 하려면 머리 속으로 여러 가지를 유추해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거기까지 어떻게 갈 것인가, 무슨 장비를 가지고 갈 것인가, 몇 사람이 필요한 일인가, 하는 일들을 결정해야 하니까요”일년에 한 번은 헬리콥터를 타고 협곡의 벽에 박혀 있는 송전선들을 점검하러 다닌다. 전선들이 해어지지는 않았는지, 전선을 싸고 있는 절연자재가 파손되지는 않았는지 일일이 검사하기 위해서다. 송전선 기둥들마다 하티간이 기어오르면서 남긴 등산화 밑창의 갈고리 스크래치들이 잔뜩 새겨져 있다.
한달에 한 번씩 하티간은 헬리콥터를 타고 캐년 바닥까지 내려가 전기 계량기를 검침한다. 그랜드캐년의 협곡 아래에 있는 유일한 숙박업소 팬텀 랜치(Phantom Ranch)와 캠프그라운드가 있는 인디언 가든(Indian Garden) 지역의 계량기 20개를 검사해야 한다.
최근의 어느 날 계량기를 검침하는 그를 따라가 보았다. 하티간을 태운 헬리콥터가 국립공원 서비스 본부를 떠나 서쪽으로 기수를 틀더니 구름 사이로 하강했다. 협곡 아래로 내려가 ‘심연’(Abyss)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발 아래로 보이는 굽이치는 콜로라도 강의 초록색 물은 얼마 전 쏟아진 폭우에 쓸려내린 모래로 흙탕물을 이루고 있었다.
강을 따라 헬리콥터를 타고 가면서 펼쳐지는 계곡 아래쪽 풍경은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외계 혹성처럼 특이하고 멋지다. 하티간은 그랜드캐년은 “결코 늙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헬리콥터가 강의 북쪽 끝에 착륙하자 하티간은 헬멧과 비행복, 장갑을 벗어놓고 걷기 시작했다. 그와 마주친 하이커들이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다.
한 여인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고 있는 지점을 지난다. 이 공중전화는 협곡 아래에서 위쪽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전화선이다. 수정같이 맑은 브라이트 앤젤 크릭(Bright Angel Creek) 옆에 세워진 캠핑 텐트들도 지나간다.
마침내 금속 클로젯을 열고 안쪽에서 전기계량기를 찾았다. 독거미 한 마리가 그의 발치에서 기어오르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한번은 클로젯 안에서 방울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얼른 몸을 피한 그는 뱀이 나가기를 한동안 기다렸다. 그러나 나갈 생각을 하지 않자 그대로 계량기를 검침하고는 떠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독거미보다 무섭고, 방울뱀보다도 나쁜 놈은 말벌이라고 한다. 워낙 빠르고 공격성이 강해서 여간해서는 벌떼의 공격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날 아침 그가 들고 간 계량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다. 하티간은 백팩에서 노트를 꺼내 미터기의 숫자를 적어 넣었다. 공원에서 일하려면 비상상황 대처가 능숙해야 한다.
하루는 피닉스의 본사 동료가 무선통신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가 헐떡거리며 받자 깜짝 놀란 동료는 “무슨 일이야?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라고 물었다.
하티간이 소리쳤다.
“이봐, 나 지금 엘크에게 쫓기는 중이야”

전력선이 곳곳에 매장돼 있는 그랜드캐년의 협곡 <사진 Tamir Kalifa>

하티간은 매달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협곡의 전기계량기를 검침한다. <사진 Tamir Kalifa>

협곡 아래의 팬텀 랜치 검침을 마치고 걸어서 돌아오는 하티간.<사진 Tamir Kali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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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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