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 구세군 잉글우드 한인교회 다니엘 최 사관
군 제대후 1년반 동안 산에서 수도승 생활도
미 유학중 구세군 사관대학 진학 2년후 사관 임명
자선냄비 모금사역하며 한인들 영혼 성숙해짐 느껴
매년 연말이면 거리에 자선냄비가 등장한다. 자선냄비는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한 구세군의 모금 캠페인이다. 오늘 인터뷰 주인공은 구세군 사관의 길을 가고 있다. 그에게 구세군 교회는 세상에서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다. 구세군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관은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라 생각한다.
그는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성령의 도우심, 말씀으로 주시는 은혜 속에서 구세군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교회 밖에 있는 약자를 찾아간다. 만나고 돌보고 나누고 베풀어준다. 그뿐 아니다. 그들의 영원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일도 한다. 그는 구세군 잉글우드 한인교회 다니엘 최(53) 사관이다.
■아침에 도를 터득하면…
그는 1963년 전북진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의 장남이다. 누이 3명, 여동생과 남동생이 각각 2명 3명이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사무직에 근무했다. 가족은 많았고 형편은 넉넉하진 않았다. 어린 시절은 고향에서 보냈다. 산에서 뛰놀고 개울가에서 고기잡이를 했다. 전쟁놀이를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어릴 적 꿈이 전투기 조종사였다. 그렇게 개구쟁이로 철없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사춘기는 번민과 반항으로 점철됐다. 전주서 자취하며 전라고교를 다닐 때다. 당시 학교에 치맛바람이 거셌다. 일부 교사들이 부잣집 학생에게 편애를 보이는 부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공부만 강요하던 시절 학교를 “땡땡이‘ 치는 날이 많아졌을 뿐이다. 그렇게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 때 파일럿의 꿈도 외교관으로 바뀌었다. 외교관인 둘째 매형의 영향이다. 외국어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이유다. 외시공부를 하면서 외교관이 적성에 맞지 않고 그런 능력도 없음을 알았다. 문학교수가 꿈이 된 이유다.
대학 3학년을 마치고 단기로 군에 갔다. 복학을 앞두고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인생의 참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산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어 수련을 쌓았다. 하지만 논어엔 아침에 도를 터득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사람이 참된 이치를 깨달으면 당장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건만 짧은 인생 값있게 살아야 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만 뼈저리게 느꼈다. 1년 6개월 동안 고행과 수련에 전념했지만 그럴싸한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차피 인생의 해답은 못 찾았지만 ‘부모님 효도에서 나의 가치를 찾자’며 하산했다.
■신앙체험
그는 수도승의 삶에서 인생의 진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함석헌 옹의 ‘사육신의 죽음’을 설명하는 데서 등장한 스데반의 순교사건을 접했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죽은 스데반을 생각하며 기독교에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후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종교모임에도 참석했다. 그러다보니 인생의 의미가 보였다. 깊은 허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고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었다.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그렇게도 갈구하던 ‘진리’를 찾은 것이다.
그는 대학졸업 후 무역회사에 다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소명이자 하늘의 소명을 강하게 느꼈다. 결국 신의 뜻을 붙들어 성직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의 나이 29세. 서울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3년간 공부 뒤 졸업하고 경기도 부천 교회에서 3년간 사역했다. 교회서 성경을 가르치는 전도사 생활을 한 것이다. 그러다 1997년 ‘교수의 꿈’을 안고 미국 유학에 나섰다. 가족(아내와 두 딸)과 함께 조지아 애틀랜타에 도착, 신학대학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1년 정도 대학원과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 밖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 작은 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구세군이 잘 어울리는 사람’
그는 유학생활 중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구세군 교회를 찾아갔다. 조지아에서 영사생활을 했던 매형이 권유했던 교회다. 그곳에서 1년6개월 동안 봉사하면서 구세군의 본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때 구세군 사관이 ‘구세군 사관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을 접었다.
그의 나이 38세. 구세군 사관대학에 진학 2년 후 졸업해 사관으로 임명됐다. 첫 사역은 알링턴 버지니아 미국교회에서 시작했다. 그 후 조지아 애틀랜타 다민족교회, 워싱턴 한인교회를 거쳐 지난해 뉴저지 구세군 잉글우드 한인교회에 부임해 현재까지 사관으로 봉직하고 있다. 애틀랜타 구세군 사관대학에서 2년 동안 교수생활을 함으로서 학자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그는 구세군 교회의 정신은 ‘마음을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이웃의 작을 형제들을 대할 때 주님을 대하듯이 사랑하고 예우하고 존경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사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고통 받는 형제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랑’, ‘섬김’, ‘봉사정신’과 ‘겸손’ 등을 꼽았다.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고,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갈 수 있는 사회공동체,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형제애가 동참하여 험한 인생길 함께 갈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관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라고 귀띔한다. 지나간 삶에서 간혹 뒷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더 용납하고 포용하고 품어주면서 축복하지 못한 것을 더욱 아쉽게 여기는 이유다.
그에겐 이익을 바라보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길 수 있는 특전이 사관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사랑의 섬김을 통해 하늘의 신비에 동참하는 일 역시 특권이고 자부심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준 하늘의 정신에 사람들이 동참해 복된 인생으로 변화되어 살아가는 보습 을 볼 때 보람으로 느낀’다는 그는 늘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희망 속에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그는 한인사회에 ‘내 가족만, 내 교회만, 내 나라만 등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가족이라는 의미를 더 크게 가졌으면 좋겠다’며 ‘가족을 포함해 직장, 단체 등 공동체 생활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를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메시지를 전한다.
구세군 교회는 처음 가난한 도시빈민 선교를 위해 사역을 시작해 지금은 재난복구, 사회사업과 마지막 때를 위한 복음사업을 하는 기독교 단체인 만큼 그는 그야말로 ‘구세군 교회에 참으로 잘 어울리는 사람’인 셈이다.
■자선냄비 활동에 참여하세요!
그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사역을 하면서 한인들의 영혼이 성숙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보다 더 관심이 많아지고 더 많이 후원하고 있으며 기부자와 자원봉사자들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자선냄비 모금은 오는 24일까지 운영된다는 그는 올해 목표금액인 5만 달러가 순조롭게 모금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모금된 성금은 양로원 사역, 재정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유틸리티 비용 제공, 사랑의 쌀 나누기, 불우한 이웃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지원 그리고 여름 어린이 캠프 등에 사용된다고 설명한다.
자선냄비 자원봉사자들은 봉사를 할수록 점점 밝아지고 기쁨에 넘쳐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는 자선냄비를 돕는 일은 결국 자신과 자신가족을 돕는 일이라며 개인뿐만 아니라 사업체들의 동참도 바라고 있다.
자선냄비 활동은 춥고 어두운 세상을 따뜻하고 밝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는 ‘봉사하는 모습이나 성금을 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말씀을 실감한다. 그에게 자선냄비 캠페인은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복 있는 삶으로 나가도록하는 ’통로‘가 되는 일이다. 그러니 한인 모두가 동참해 ’복‘된 삶을 누리길 바란다“고 강조한다.
■내 인생의 결론
그는 고통 받는 형제들과 함께 가는 길이 자신의 길이라 여긴다. 은퇴까지는 구세군 사역에 충실하고 이후에는 아시아의 어려운 나라에 가서 선교사역과 지역사회 자원봉사를 할 계획이다. 노년에는 글쓰기를 하고자 한다.
행복은 사랑하고 감사할 때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그는 인생은 고통의 바다에서 하늘의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에 비유한다. 균형 있는 식사, 숙면과 마음에 기쁨이 건강비결이라는 그는 시간이 주어질 때 짬짬이 하이킹과 여행을 즐긴다.
그는 아내와 사이에 딸 셋을 두고 있다. 아내는 대학원 재학 중 여름방학 신앙수련회에서 만났다. 어느 날 꿈속에서 본 아내가 될 자매와 꼭 닮은 자매를 현실에서 만난 것이다. 1년 정도 연애를 했고, 외로운 인생길 함께 살 동반자로 삼았다.
사려 깊고 우호적인 성격인 그의 살아가는 방식은 ‘하늘을 품으면 희망이 보이고 생명이 충만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살아갈 계획이라는 그의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바로 그가 터득한 인생의 결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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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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