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리 시걸, 조 슈스터의 슈퍼맨…1930년대 만화로 탄생한 원조 영웅
▶ 거대한 히어로 문화 장르 열어 공동창작체제 연재물 무한확장, 영원히 이어질 현대판 민담설화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십대들이 상상한 슈퍼 히어로, 미국의 신화가 되다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십대들이 상상한 슈퍼 히어로, 미국의 신화가 되다](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7/07/11/l_2017071201000480500013421.jpg)
이 전형적인 영웅의 포즈. 가장 미국적인 영웅을 상징했던 슈퍼맨의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다. 사진은 영화 ‘슈퍼맨 리턴즈’(2006).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1946년,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서른 살의 스테트슨 케네디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백인우월주의단체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 이른바 KKK단에 위장가입 중이었다. 1860년대, 남북전쟁 끝 무렵 노예 해방에 반대하여 생겨난 이 단체는 1920년대에는 회원수가 450만명에 이르고 대낮에 워싱턴을 행진할 만큼 기세가 등등했다. 이들은 흑인에 대한 테러, 살인과 강간까지 벌였지만 백인중심주의 사회의 암묵적인 방치 속에 성행하고 있었다.
케네디는 ‘KKK단은 폭력만 빼고 보면 믿을 수 없이 바보스럽다’는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퍼트릴까 고민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케네디는 한 라디오 드라마와 접촉했다. 바로 1940년에 시작해 당시 미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슈퍼맨의 모험’이었다.
그 주, 여느 때처럼 충성 서약을 하고 나온 KKK 단원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자기 아이들이 머리에 베갯잇을 쓰고 슈퍼맨이 KKK단을 꼭 닮은 적과 싸우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디서 정보가 새 나갔는지 자신들의 비밀의식이 슈퍼맨 드라마에 연일 공개되고 있었다.
‘슈퍼맨의 적이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KKK단은 공포감도 신비감도 사라지고 그저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 16편의 슈퍼맨 에피소드, ‘불타는 십자군’(The Clan of the Fiery Cross)은 KKK단의 몰락을 부추긴 사건 중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슈퍼맨이 미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가를 보여준다.
■현대에 태어난 민담신화
한국에서는 할리우드 영화가 소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하나의 조롱거리로 여겨졌지만, 초인 영웅이 활약하는 히어로 코믹스는 1930년대 이래 미국 만화산업의 중심이며, 나아가 미국 대중문화의 큰 중심축이다. 대규모 공동창작 체제로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와 스토리작가가 줄줄이 참여하여 무수한 걸작이 쏟아져 나오는 분야이기도 하다. DC코믹스의 ‘왓치맨’(앨런 무어)이 1988년 최고의 SF/판타지에 수여되는 휴고상을 수상했고, 2009년 그래픽노블 스토리 부문이 신설된 이후로는 ‘샌드맨: 서곡’(닐 게이먼)을 비롯한 여러 히어로 만화가 후보작과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국가적인 만화산업이 펼쳐진 계기는 두말할 것 없이 ‘슈퍼맨’이었다.
동갑내기 친구였던 제리 시걸과 조 슈스터는 십대 시절 교내 신문에 연재했던 ‘슈퍼맨’을 게재할 곳을 찾아 다녔지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며 거듭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간신히 1938년 액션코믹스에 게재를 허락받았을 때, 살짝 좌절해 있던 이 젊은이들은 고작 130달러에 저작권을 비롯한 모든 권리를 회사에 넘겨버렸다. 회사는 물론 작가 자신들조차 꿈에도 성공을 점치지 않은 이 작품은 1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다른 잡지들이 월 20만~40만부를 판매하던 당시 액션코믹스의 판매는 100만부에 육박했고, 곧 슈퍼맨을 잡지 표지로 하지 않고는 발간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한창 시절의 판매부수는 월 850만부에 다다랐다.
■모든 시대의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슈퍼맨의 인기에 힘입어 무수한 히어로들이 연이어 생겨나면서, 그 기원이자 중심인 슈퍼맨은 더욱 더 좁은 의미로 ‘가장 전형적인 영웅상’을 강요받게 되었다. 슈퍼맨은 ‘진실, 정의, 그리고 미국의 길’을 신앙처럼 읊조리며 그 시대 미국의 자기상을 드러내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 시대에 슈퍼맨의 힘에는 제한이 없었다. 행성을 힘 하나 안 들이고 줄줄이 끌고 다니거나 재채기로 태양계를 부수고 지구를 입김으로 이동시킬 정도였다. 하지만 슈퍼맨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점점 우스갯거리가 되었다.
2000년에 와서는 슈퍼맨의 숙적인 렉스 루터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어 절대 악이 외부의 적이 아니라 미국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성찰을 보여주었는데, 이 이야기의 첫 에피소드 출간일은 11월 8일, 조지 W. 부시가 앨 고어를 근소한 차이로 이긴 다음날이었다. 3년 뒤에는 슈퍼맨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 떨어졌다는 가정 하에 그려진 ‘레드 선(Red Son)’(마크 밀러)이 출간되었다. 슈퍼맨을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의 신냉전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한 나라에서 옳다고 믿는 가치가 다른 나라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성찰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남몰래 슈퍼히어로 활동을 하는, 오바마를 꼭 닮은 평행세계의 흑인 슈퍼맨이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시대가 바라는 영웅은 누구인가
슈퍼맨에게는 모순적인 정체성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은 유대인 이민자에 의해 태어난 이 캐릭터가 ‘이미 사라져버린 외계행성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절대적인 이방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 전체가 또한 이민자의 합으로 구성된 미국의 한 정체성이 아닐까.
2011년 4월28일, 슈퍼맨 액션코믹스 900호 ‘사건’편(스토리 데이비드 S. 고이어)은 미 주요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한국에도 외신을 통해 소개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슈퍼맨은 이 작품에서 이란의 테헤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시위대편에 섰다. 슈퍼맨이 24시간 무저항의 시위를 하는 새 시위군중은 12만명에서 100만명으로 늘어났고 시위는 평화롭게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국제 문제가 되자 슈퍼맨은 “진실, 정의와 미국의 방식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세계는 너무 작고 너무 연결되어 있다”며 미국시민권 포기를 선언했다.
슈퍼맨은 영생을 갖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다름이 없다. 한 나라를 넘어서 사랑받기 시작한 슈퍼맨은 그 나라의 이상향을 넘어서서, 시대가 어떤 인물을 ‘가장 전형적인 영웅’이라 생각하는가를 보여준다. ‘가장 원형적인 영웅상’을 독자에게서나 작가에게서나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이 인물은, 세상이 어떤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가를 매번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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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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