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출, 퇴학, 싸움으로 점철된 인생
▶ 굴하지 않고 1,700여편 쏟아내
문학상만 60회… 최다 수상 작가
‘스타트렉’한편 쓰고 50년간 회자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SF계 악동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SF계 악동](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17/09/26/20170926181228592.jpg)
700여편의 ‘스타트렉’ 에피소드 중 최고로 꼽히는 시즌1 제28편 ‘영원의 경계에 선 도시’는 미국작가조합상을 받은 유일한 ‘스타트렉’ 에피소드다. 그 작가가 단 한 편 ‘스타트렉’을 쓴 할란 엘리슨이다. 파라마운트
할란 엘리슨, 성질머리와 재능
진 로덴베리가 1966년에 시작한 미국 SF 드라마 ‘스타트렉’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TV로만 6종류, 30시즌, 726편 이상의 에피소드가 방영된, 문화현상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 방대한 에피소드 중 인기투표를 하면 늘 순위에 오르는 것은 물론 종종 1위로 손꼽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첫 시즌의 제28편, ‘영원의 경계에 선 도시(The City on the Edge of Forever)’(1967)이다. 등장인물의 개성, 유머, 로맨스, 아이러니, 반전과 결말까지 완벽한 이 작품은 휴고상, 미국작가조합상을 수상했고, 소설, 만화, 게임에 재수록되었고, 1995년 미국에서 조사한 ‘TV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68위에 올랐다.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재작년에는 만화화 되었고 작년 세계SF대회에서도 다시 언급되어 토론회가 열렸다. 이 에피소드의 원안자가 바로 할란 엘리슨Ⓡ(자기 이름을 상표로 등록해 놓았다)이다.
■전설적인 성질머리의 전설적인 작가
그는 십대에 집을 뛰쳐나와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았고, 오하이오대에서는 18개월 만에 퇴학당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교수가 자기에게 글의 재능이 없다고 했다는 이유로 교수를 팼기 때문이라고 한다(그리고 두 해만에 100여 편의 단편을 쏟아낸 뒤 20년간 출간할 때마다 그 교수에게 꼬박꼬박 책을 보내는 경이로운 뒤끝을 자랑했다).
디즈니에도 고용되었다가 하루 만에 해고되었는데, 디즈니 작품으로 포르노를 만들자는 농담을 하다가 들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엘리슨은 뛰쳐나오는 데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훔쳤다 싶은 이들에게 지치지 않고 소송을 걸었다.
그는 ‘로보캅’의 전신이라 할 만한 ABC TV 시리즈 ‘미래 경찰(Future Cop)’(1977)에 표절소송을 걸어 승소했고, 받은 돈 중 일부를 투자해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길 건너편 광고판에 “할란 엘리슨을 찬양하라! 작가들이여, 놈들이 아이디어를 훔치게 놔두지 마라!”라는 게시물을 떡하니 걸어놓았다.
2000년에는 자신의 작품을 불법 게시한 사람들을 고소하면서 관리 부실의 책임을 물어 무려 AOL을 비롯한 미 온라인 회사들을 직접 고소했다.
그래도 되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AOL은 결국 4년 뒤 항복하고 돈을 지불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설적인 영화 ‘터미네이터’(1984)의 원작자 이름에 할란 엘리슨이 올라가 있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엘리슨은 이 영화가 그의 ‘아우터 리미트(Outer Limits)’(1974) TV시리즈 중 ‘병사들(Soldier)’과, ‘유리손을 가진 악마’와 유사하다고 소송을 걸었다. 미래 세계에서 병사가 번개와 함께 도시의 골목으로 시간여행을 하는 연출은 ‘병사들’과, 로봇이 자신의 기계팔을 내려다보는 장면은 ‘유리 손을 가진 악마’와 유사하다.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을 발굴하다
당연히, 엘리슨의 명성은 그의 경이로운 성질에 있지 않으며, 그가 쏟아낸 막대한 양의 탁월한 작품들에 있다. 그는 1,700편 이상의 중단편 소설, 각본, 만화 대본, 에세이, 비평선을 썼다. 영화 ‘오스카’의 대본을 썼고 ‘아우터 리미트’를 포함한 수많은 TV시리즈를 집필했다.
문학상만 60여회를 수상해 실상 살아있는 작가들 중 가장 상을 많이 탄 사람에 속한다.
한편으로 그는 교사와 편집자로서의 안목도 뛰어나, 당시의 SF 주류와 달라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들을 무수히 발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초의 흑인 여성 SF작가인 옥타비아 버틀러를 발굴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인종갈등이 첨예했던 1970년, 그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문학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이 흑인여자의 재능을 발견하고 창작 워크숍에 추천하며 작가가 되도록 격려했다. 다양한 문학상을 거머쥔 ‘히페리온’의 저자 댄 시먼스도 엘리슨이 찾아내기 전까지는 작품마다 퇴짜를 맞던 작가였다.
작가를 찾아내는 그의 탁월한 안목은 ‘위험한 비전’(1967), ‘다시, 위험한 비전’(1972)이라는 두 권의 선집에서도 드러난다. 뉴웨이브 SF의 기념비적인 성과로 손꼽히는 이 선집은 수록작이 줄줄이 휴고상과 네뷸러상에 올랐고, 엘리슨 본인도 ‘67년 가장 훌륭한 SF 선집’으로 특별 표창장을 받았다.
로버트 실버버그, 필립 K. 딕, 로저 젤라즈니, 사무엘 R. 딜레이니, 래리 니븐 등 참여한 작가들의 이름도 쟁쟁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당시에는 아직 신인이나 무명이었다는 점이 그의 안목을 증명한다.
■할란 엘리슨, 아직 안 죽었다
엘리슨은 2009년에도 파라마운트가 ‘영원의 경계에 선 도시’에 대한 저작료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걸었다.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미국작가조합(WGA)에도 책임을 물어 소송을 걸었지만 여러 제반 조건을 생각해 청구비용은 너그럽게 1달러로 잡았다.
2010년에는 코맥 맥카시의 퓰리처상 수상작 ‘더 로드’가 자신의 소설 ‘소년과 개’를 훔쳤다고 주장했고, 같은 해 인기 애니메이션 ‘스쿠비 두’에서는 러브크래프트와 함께 미스캐토닉 대학의 문학교수로 등장해 직접 성우로 본인 자신을 연기했다.
2013년에는 그래픽노블을 써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유튜브 방송을 하며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왔다. 그렇다. 할란 엘리슨, 아직 안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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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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