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 냉전 이후의 화해분위기 반영, 기존 SF에 없었던 새 외계인상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어린아이와 소통하는 존재로 그려낸 영화는 ‘이티’가 처음이었다. UIP 코리아 제공
인류 역사상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누구일까? ‘아바타’와 ‘타이타닉’으로 대작 흥행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제임스 카메론?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로 십 수 년째 세계적인 흥행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피터 잭슨? 답은 스티븐 스필버그이다. 세계 영화계에서 스필버그처럼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수의 화제작과 흥행작들을 꾸준히 생산해내고 있는 감독은 사실상 다른 예가 전무하다.
너무나 많은 작품을 내놓았고 그 장르적 스펙트럼도 넓으며 대부분 흥행에 성공한 편이기에 지금의 스필버그의 이미지는 ‘상업영화의 천재’에 가깝지만, 사실 그는 SF를 통해 과학적 사안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엄청난 기여를 한 인물이다.
■냉전 시대 저물자 친구가 된 외계인
1982년에 선을 보인 ‘이티(E.T.)’는 원래 스필버그나 제작사(유니버설스튜디오) 모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만든 영화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뒤 스필버그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외계인 친구를 상상하며 지냈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접촉한 콜럼비아픽처스는 ‘디즈니 아류 같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티’는 극장에 걸리자마자 흥행 1위 자리에 오른 뒤 몇 달 간 1~2위를 오가며 계속 최상위권에 머물렀다. 개봉한 뒤 무려 반년이 지난 12월에도 흥행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더니, 해가 바뀌면서 결국은 ‘스타 워즈’를 끌어내리고 세계 영화사상 역대 흥행 1위 자리에 우뚝 섰다.
과연 이 영화가 이렇듯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설정이나 스토리가 가족 영화로서 훌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외계인’이라는 낯선 존재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뒤집어버린 영향이 크다. 그전까지 SF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괴물 아니면 사악한 침략자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이 작품이 나온 80년대 초반은 70년대부터 이어져 온 국제정세의 데탕트(긴장완화)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시기이다.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감축을 논의하면서 인류 종말의 전면핵전쟁이 발발하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이 잦아들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스타 워즈’에 등장하는 다스 베이더의 제국군 모습인데 그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널리 입던 인민복을 착용하고 있다.
‘이티’는 이러한 국제 정세의 전환기에 전혀 새로운 외계인상을, 그것도 어린이들의 친구라는 캐릭터로 등장시켜 ‘외계 괴물’로 고착되어 있던 성인들의 선입견을 단숨에 무장해제 시켰다.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SF계의 응답이었다.
■외계 지성과의 만남은 신비주의 아니다
‘이티’가 불러일으킨, ‘외계인도 친구일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궁극적으로 외계생명체를 감정이나 정서가 아닌 과학의 눈으로 대하도록 주의를 환기시켰다. 앞서 1977년에 스필버그가 내놓은 ‘미지와의 조우’, 그리고 1980년에 나온 칼 세이건의 논픽션 ‘코스모스’ TV시리즈와 함께 ‘이티’는 외계생명체가 정상과학의 진지한 대상으로 편입되도록 대중과 과학자 사회의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이다. 그전까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외계생명체를 연구한다는 것은 드러내놓고 얘기하기를 꺼리는 주제였다.
스필버그가 10대 시절 만들었던 영화의 주제를 다시 살린 ‘미지와의 조우’는 제목부터가 과학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영어 제목인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는 원래의 뉘앙스를 살려 우리말로 옮기자면 ’(외계 존재와의) 세 번째 단계의 근접 접촉‘이 된다. UFO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접촉을 세 단계로 나눈다. 첫 번째 단계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UFO를 목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UFO로 인해 비정상적인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전자제품이 오작동한다거나 강렬한 빛과 열기 등을 느끼거나 기타 물리적, 화학적 이상 현상이 보고된 실례가 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이 영화의 내용처럼 외계에서 온 존재와 직접 만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접촉은 ’최초의 접촉(first contact)‘이라고 해서 SF에서 전통적으로 즐겨 다루는 주제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SF적 미래 전망의 교과서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사람마다 기억하는 작품이 다르다. SF 장르로만 한정시켜도 화제작들이 많다. ‘쥬라기 공원’, ‘A.I.’,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등. 이런 작품들을 통해 스필버그가 영화산업에, 또 과학기술의 사회적 수용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1993년에 발표한 ‘쥬라기 공원’은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실상 최초의 작품으로서, 실제로 찍은 듯한 생생한 공룡들의 모습은 세계 영화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전까지는 공룡을 비롯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괴수를 묘사할 경우 정교하게 만든 모형으로 스톱모션 촬영을 하거나 사람이 탈을 뒤집어쓰고 연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현실감이 떨어져 아무래도 몰입감이 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쥬라기 공원’은 당시의 최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해서 움직임이 자연스러우면서 세부 묘사도 꼼꼼한 거대 공룡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그 결과는 ‘쥬라기 공원’의 흥행 성적이 너무나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는 당시까지의 역대 흥행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세계 최고의 수입을 거둔 전설적인 흥행작이 됐다.(‘쥬라기 공원’ 이전까지 10년 넘게 세계 최고 흥행작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작품은 스필버그의 ‘이티’였다.)
한편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와 ‘A.I.’(2001)는 각각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 분야의 근미래 전망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주요 참고자료이다. 나날이 변화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현실화되었을 경우 개개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이나 상황이 나타나게 될지를 스필버그는 그 어떤 감독보다도 현실적이면서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데 능했다. 그래서 만년에 들어 선 스필버그가 예전만큼 SF에 뜻을 두지 않는 듯한 것이 못내 아쉽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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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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