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칼 세이건의 ‘콘택트’
▶ 과학대중화 이끈 천문학자의 SF, 학계 보수성 깨고 연구범위 확대

칼 세이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콘택트’. 이 우주에 지적 존재가 인간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세이건 이후 비로소 진지한 과학의 연구분야로 편입됐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1980년대의 ‘과학소년’들은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너도 나도 이런 글을 쓰곤 했다.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 아쉽게도 나는 이런 편지를 나눌 여자친구가 없었고, 대신 함께 과학책을 읽고 토론하던 남자사람 친구에게 위 글이 적힌 편지를 받았던 기억만 있다. 이 멋진 글은 원래 칼 세이건이 아내인 앤 드류얀에게 바친 헌사로서 그의 대표 저작인 ‘코스모스’ 맨 앞에 실려 있다. ‘코스모스’는 내 인생의 책 중 하나다. 중학생 시절 구입한 뒤 수시로 탐독하면서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고교생 때는 이 책을 보느라 입시 공부를 소홀히 한다고 아버지에게 압수당한 적도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코스모스 키드’였던 것이다.
■과학과 스토리텔링의 결합
책과 함께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도 애청했다. ‘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 등 다른 교양천문학 책들도 즐겨 읽었는데 왜 유독 세이건에게 빠져들었나 돌이켜보면, 학문의 경계를 넘어 SF 스토리텔링으로 확장되는 상상력에 매혹되었던 것 같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에서 맨 처음 흥미를 끌었던 부분도 가상의 우주선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이렇듯 스토리텔링과 과학적 사실을 결합시킨 것이야말로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한 세이건의 강점이다. 언젠가 그가 술회하기를 일부 과학자들은 자신을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어려운 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것 자체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학을 상아탑 안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연구하는 학자의 전유물로 여긴 반면, 세이건은 대중에게 과학을 널리 알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통해 그 원하는 바를 멋지게 이루었던 것이다.
세이건이 취한 다음 행보는 SF를 집필하는 것이었다. 소년 시절부터 SF 애독자였던 세이건은 이미 70년대 말부터 훗날 세 번째 아내가 되는 앤 드류얀과 함께 SF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영화화 작업이 순조롭지 않자 세이건은 이 초고를 바탕으로 본인이 소설을 쓰고자 마음먹었고, 1981년에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는 책의 출판권을 선인세 200만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이 금액은 집필하지 않은 책에 대한 선금으로는 당시까지 최고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마침내 1985년에 ‘콘택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을 보인다.
■외계생명체 탐사, SF서 과학으로
‘콘택트’는 1985년 미국 베스트셀러 순위 7위에 올랐고 출간 뒤 2년 동안 170만 부가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영화화 작업도 재시동이 걸렸으나 감독이 여러 차례 갈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97년에야 스크린에 걸렸다. 안타깝게도 세이건은 그 전 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콘택트’의 주인공은 인간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리로 장거리 우주여행을 경험하고 외계의 지적 존재와도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서 인류가 때로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무척 흥미로운 존재라는 말을 듣는다.
세이건은 진작부터 연구 현장에서 SF와 같은 아이디어를 실제 계획에 반영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1972년과 73년에 발사된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와 11호에는 손을 들어 인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금속판이 실려 있는데, 혹시라도 지적인 외계 존재를 만날 경우를 위한 ‘지구로부터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2호 우주탐사선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녹음된 인사말과 다양한 사진 등이 담긴 ‘골든디스크’가 탑재되었다. 여기에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도 들어 있다. 태양계를 벗어나 현재 심우주 영역으로 접어든 이 우주탐사선들에 지구인의 메시지를 담은 사람이 바로 칼 세이건이다.
그는 우주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프랭크 드레이크 등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전까지 이런 분야는 SF로 취급되어 과학자들 사이에서 정식 연구 주제로 삼기를 꺼리는 풍토였던 것이다.
■우주 저편에서 본 지구
1990년 2월,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는 태양계 탐사 임무를 마치고 먼 바깥우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그 때 세이건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 요청해 보이저의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촬영하도록 했다. 이 때 찍힌 사진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으로 불리는 유명한 지구의 모습이다. 세이건은 여기에 감동적인 해설을 붙였는데, ‘이 먼지 같은 티끌이 우리의 보금자리고, 고향이고, 바로 우리이다.
우리가 알고 들었던 모든 사람들,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여기서 삶을 살았다. 모든 즐거움과 고통, 모든 종교와 이념, 경제체제,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모든 문명의 창시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모든 연인들,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 희망에 찬 아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를 가르친 선생들, 부패한 정치가, 인기스타들, 위대한 지도자들,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이 우주에 뜬 먼지 같은 곳에 살았던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세이건은 ‘콘택트’ 외에 SF를 쓰지는 않았지만, 다른 SF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파이어니어나 보이저 우주선에 실린 지구의 메시지는 여러 작품에 영감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1984년에 나온 영화 ‘스타맨’을 들 수 있다. 보이저의 메시지를 보고 지구로 찾아 온 외계인이 사람들에게 쫓기면서도 평화와 치유의 행적만을 남기다 고향별로 돌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나중에 TV 연속극으로 만들어져 국내에도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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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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