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미래에서 온 이야기] 프랭크 허버트의‘듄’
▶ 오리건 모래언덕 모티프 삼아, 작가 일생 바친 대하장편 시리즈
최초의 생태주의 SF인 ‘듄’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영화화를 추진하다가 결국 좌초됐다. 우여곡절 끝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된 1984년작 ‘듄’은 원작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니버설픽쳐스 제공
프랭크 패트릭 허버트
최근 캘리포니아주는 1895년 이래 최악의 가뭄에 시달렸다. 5년간 지속된 가뭄으로 저수지는 말라붙었고 1,250만 그루의 나무가 말라죽었다. 주 정부는 167년 만에 절수명령을 시행해 물 배급을 25% 줄여야 했다. ‘가뭄 종료’ 선언이 된 것은 겨우 올해 4월7일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이런 대규모 가뭄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른다.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과학·환경정책 교수인 다니엘 페르난데스는 오래 전부터 ‘바람덫’과 ’이슬응결기’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이는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 ‘듄’에 나오는, 공기 중의 수증기를 수집해 먹는 물로 바꾸는 장치다. 지역사회에 물 관리 서비스 앱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회사 워터스마트의 창립자 피터 욜레는 ‘사막복’에 꽂혀 있다. 마찬가지로 소설 ‘듄’에 등장하는 몸에서 나는 수분을 재활용하는 옷이다. 이들은 사막화되어가는 캘리포니아를 구하려면 소설 ‘듄’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뿐인 지구를 생각하게 하다
‘듄’은 허버트가 1963년부터 쓰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썼으며, 이후 그의 아들이 속편을 이어가고 있는 대하장편소설이다. SF로서는 처음으로 인종, 종교, 정치, 지형, 문화, 역사, 환경을 포함한 생태계를 구현한 작품으로, 작가 아서 클라크가 “이 작품에 비견할 소설은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밖에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환경과 생태학을 다룬 첫 소설로 평가되기도 한다.
1959년, 기자였던 허버트는 미 농무부의 한 프로그램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오리건주 해안의 모래언덕을 조사하고 있었다. 농무부는 1930년대 이래 이 해변에 뿌리가 긴 유럽모래사초를 심어 모래의 이동을 막고 있었다. 허버트는 경비행기를 타고 모래언덕을 내려다보며 그 장엄한 풍경에 사로잡혔다. 태평양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언덕이 동쪽으로 이동하며 모든 것을 파묻어 버렸다. 허버트는 “이 모래파도는 해일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유발한다. 숲을 휩쓸고 호수를 망치고 항구를 메운다”고 기술했다.
‘듄’의 주인공은 ‘모래언덕(dune)’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이전에 사막 그 자체다. 소설의 무대인 행성 아라키스는 별 전체가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다. 전체가 사막이기에 지구처럼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다른 곳에서 습기가 날아오기를 기대할 수도 없다.
이 별에서 물은 너무나 희소하여 신성하기까지 하다. 아라키스의 사막부족인 프레멘은 사막복을 입어 몸에서 나오는 땀, 소변을 전부 식수로 재활용하고, 바람덫과 이슬응결기로 대기 중의 수증기를 모으고, 지하저수지와 하수관으로 물을 저장하고 나른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에서 마지막 한 방울의 수분까지 모은다. 물을 남에게 주는 것은 청혼을 뜻하며, 소중한 침을 뱉는 것은 신뢰를 뜻한다. 눈물이 귀하기에 울지도 않는다. 더해서 이 사막에는 모래 속을 기어 다니며 사람이고 기계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모래벌레라는 괴생물체가 있어 가뜩이나 열악한 환경을 더 열악하게 한다.
■SF 문화생태계의 시조
‘듄’은 워낙 일찍 유명세를 탄 탓에 역설적으로 그 자신보다 파생된 작품이 더 유명해진 편이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이 제작하려 했던 ‘듄’ 영화는 살바도르 달리와 오손 웰스, 핑크 플로이드까지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지만 예산문제로 좌초되었고, 이 프로젝트는 대신 두 개의 전설적인 SF영화로 갈라져나갔다.
‘듄’의 시나리오 작가 댄 오배넌과 아티스트 한스 루돌프 기거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이리언’으로 옮겨갔다. ‘듄’의 세계관은 ‘스타워즈’로 이어졌고, 행성 아라키스는 ‘스타워즈’의 첫 행성인 모래행성 타투인으로 구현되었다. 황제와 싸우는 예언의 소년 폴의 이미지는 주인공 루크로, 모래벌레와 융합한 레토 황제의 이미지는 괴물 ‘자바 더 헛’으로 이어졌다. 제다이와 포스의 개념도 허버트가 선불교에서 가져온 ‘듄’의 ‘베네 게세리트’와 그 가르침을 연상시킨다. 이 유사성을 심각하게 생각한 이들도 있었지만 허버트는 웃어넘겼고, 루카스가 아이디어를 가져간 듯한 여러 다른 SF 작가들과 함께 ‘루카스를 고소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위대하지 모임’을 결성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게임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듄’이 소설 내내 강조하는 자원수급과 운용, 환경조성의 중요성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시뮬레이션 전투의 아이디어를 주었고, ‘듄Ⅱ’는 1992년 세계 최초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RTS)게임으로 발표되었다. 역시 너무 일렀던 탓에 더 큰 유명세는 그 방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블리자드사의 게임 ‘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가 차지했다.
■사막화 앞에서 ‘듄’의 지혜를 생각하다
‘듄’이 출간된 지 54년이 지난 현재, 지구의 사막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65만㎢가 사막이 되었고, 매해 6만~10만㎢가 사막화되고 있다. 중국 대지의 30% 이상, 몽골의 90%가 사막화되었고, 이는 심각한 황사를 일으켜 한국에도 직접적인 재난이 되고 있다.
2013년, 가뭄이 지속되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빗물을 받아 화장실 변기물을 내리는 용도로 쓰는 것이 허용되었다. 페르난데스 교수는 이미 세계 8개국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캐나다의 비영리단체 포그퀘스트의 ‘안개잡이’를 캘리포니아에 세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촘촘한 그물망에 이슬이 맺히게 하는 단순한 장치로, 바람이 좋은 날에는 이 장치 하나로 하루 평균 식수 30리터를 모을 수 있었다. 포그퀘스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듄’에 등장하는 생태학자와 거의 유사한 제안을 한다.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에 묘목을 심고, 우선은 안개잡이로 모은 물로 나무를 키운 뒤 나중에 묘목이 자라 자생하게 되면 그 숲이 물을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미 농무부는 오리건주 해안 모래언덕에 유럽모래사초를 뿌리고 있다. 이 식물은 인간이 계속 살피지 않으면 쓸려가 버리거나 뿌리가 짧은 다른 식물에 잠식되어 버린다. 이들은 모래를 안정시키고 인간의 거주지를 보호하고 있지만, 환경의 변화로 해안생물 서식지가 파괴되는 점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다.
<
김보영 SF 작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