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포된 어산지, 진보진영서도 극과 극 평가
▶ 러의 미국대선 개입도 일조, 무엇을 위한 폭로인가 의문, 러 이탈리아선 “석방”촉구

11일 영국에서 체포된 줄리언 어산지가 호송 차량을 타고 법정에 도착하면서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AP]
개인의 자유와 진실에 헌신한 열린사회의 수호자인가, 독선과 영웅주의에 빠진 이적행위자인가.
11일 영국에서 체포된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를 보는 시각은 서방, 더 나아가 진보 진영 안에서도 극단적으로 갈린다.
그의 조직이나 위계에 순응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로서 기질은 성장기서부터 나타났다. 1971년 호주 퀸즐랜드 출생인 어산지는 성장기에 학교 37곳을 옮겨 다녔고, 청소년기 이후로 25차례 불법행위로 벌금 등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그는 2006년 마음이 맞는 활동가들과 폭로 전문 단체·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설립했다. 위키리크스가 대중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건 설립 이듬해 미군 아파치 헬리콥터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기자 등 민간인 무리를 향해 발포하는 충격적 영상을 폭로하면서다. 이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군사작전 관련 기밀 문건 각각 9만건과 40만건을 유출했다.
은폐된 진실을 고발하는 어산지와 동료들의 활동은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큰 지지를 받았다. 그는 2010년 11월 위키리크스가 미군 ‘내부고발자’ 브래들리 매닝(수감 중 성전환 후 첼시 매닝으로 개명)으로부터 입수한 미국 외교 전문 25만건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미국 정부의 ‘타깃’이 됐다.
위키리크스 폭로로 미국 정부가 확보한 각국 국가원수급 인사의 부패·비행과 그에 관한 미국 관료의 평가, 외교 갈등의 막후 전개, 독재자와 협력하는 미국 정부의 위선적 실체 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스타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2013년 영국 일간 가디언에 ‘에드워드 스노든, 첼시 매닝, 줄리언 어산지: 우리의 새로운 영웅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고, “이들은 우리가 사는 디지털화된 통제 시대에 상응하는 새로운 윤리의 전형”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나 내부 갈등과 실수로 외교 전문이 외부로 유출되자 위키리크스는 2011년 8월 말 남은 전문을 한꺼번에 쏟아내면서 역풍을 맞게 된다. 위키리크스가 미국 정보기관의 현지 정보원과 협력자, 폐쇄적 조직의 내부고발자 신원까지도 편집 없이 무차별 공개, 곤경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무차별 폭로의 정당성 논란과 별개로 2010년에는 스웨덴에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며 어산지 개인의 이미지도 추락했다.
2012년 어산지는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송환되는 것을 피하려고 런던 주재 에콰도르대사관으로 피신을 택했다. 그는 대사관 내에서 가택연금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미국 정부의 광범위한 감시를 폭로한 스노든 등과 협력하며 미국 정부를 계속 괴롭혔다.
2016년 미국 대선을 거치며 어산지에 대한 여론은 더 나빠졌다.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 ‘부패’ 이미지를 씌우며 큰 타격을 준 ‘이메일 스캔들’ 확산에 위키리크스의 역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 연계 집단이 힐러리 진영의 시스템을 해킹했고 그렇게 확보된 자료가 위키리크스 등을 통해 유출됐다. 특검 수사가 맞는다면 결과적으로 어산지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을 도운 셈이어서 ‘무엇을 위한 폭로인가’라는 의문도 커졌다.
이러한 행보로 어산지가 진보 진영에서 인심을 잃는 대신, 역설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에서 되레 옹호를 받는 역설적 상황도 벌어졌다.
한편 어산지 체포 소식에 세계 각국에서 엇갈린 논평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러시아가 영국 경찰의 어산지 체포를 비난하고 나섰고, 러시아에 망명한 전 미국 정보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어산지의 체포를 ‘언론의 자유에 어두운 순간’이라고 비판했다. 이탈리아도 어산지의 석방을 촉구했다.
반면 영국의 외무장관은 어산지가 영웅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제러미 헌트 장관은 트위터에서 “어산지는 영웅이 아니다. 그는 수년간 진실로부터 도피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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