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현관 옆 창가 자리이다. 작업실로 쓰는 방은 종일 불을 켜야 하는데, 그곳은 자연 채광만으로도 밝고 환하다. 앞뜰에 심은 백일홍과 무궁화가 한창이어서 연보라색 꽃과 초록 잎을보고 있으면 안구가 정화된다. 나무는 뜨거운 오븐도 울고 간다는 텍사스의 한여름 땡볕을 가려줄 뿐 아니라 병풍 역할을 해주어서 요즘 블라인드를 열고 지낸다.
창문 옆 벽 쪽으론 세라믹 곰들이 들어있는 장식장이 있다. 낮에 봐도 예쁘지만, 밤에 장착된 불을 켜면 은은하고 신비로운 곰돌이 월드가 된다. 곰이 여기저기 있는 게 보기 싫어서 남편이 조립해준 거다. 책장도 그랬다. 책이 늘어나 쌓이니 보다 못해 IKEA에서 자재를 사다가 내 책장 13개에 딸내미 책장, 서랍장, 신발장까지 조립하느라 고생을 했다. 수납공간이 생긴 덕분에 집안이 깨끗해졌다.
지인들이 오면 장식장의 곰인형을 구경하며 이것저것 묻는다. 설명하다 보면 딸내미 장난감인 줄 알았다가 내거라서 놀라고, 가격에 놀란다. 초기엔 나도 뭐가 뭔지 몰랐다. 그냥 귀여워서‘‘달러 스토어’에서 하나둘 사곤 했다. 그때 모았던 것들은 여러 번 이사하다 깨져서 버리기도 했고, 안 쓰는 살림살이를 굿윌(Goodwill)에 기부할 때 대부분 치웠다.
세라믹 곰에도 급이 있고 컬렉터나 마니아층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정교하고 예쁘고 색이 선명했다. 한동안 곰에게 미쳐서 주말이면 부자동네 거라지 세일을 돌기도 하고, 중고 매장도 가고, 이베이 경매도 하고, 정말 좋아하는 건 큰돈을 주고 새것을 사기도 했다.
곰의 바닥에는 주민등록증처럼 곰 이름과 레지스터 번호 등이 기록되어 있다. 장식장에 있는 소장품은 지금 되팔아도 제값을 받거나 더 받을 수 있는 것만 있는 셈이다. 하나씩 보고 있으면 예뻐서 웃음이 그려지곤 했다. 그런 게 소소한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밖의 온도가 화씨 100도를 넘나드니 에어컨을 틀어도 주방에 개스 불을 켜면 더워서 음식 하는 게 싫다. 점심때 딸이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를 사주고 소화시킬 겸 동네에 있는 앤틱 몰에 들렀다. 그곳에선 수많은 벤더가 자리를 얻어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물건들을 파는 데, 주인이 나와 있는 곳은 없고 가격표를 붙여 위탁 판매를 하고 있었다.
바비 영화가 나온 후 바비 관련 물건은 싹쓸이하다시피 하여 빠졌다는 데도 박스에 든 한정판이 남아있었고 곰은 없었다. 내가 곰을 찾고 있다는 걸 아는 딸내미가 한소리 던졌다. 엄마처럼 곰을 모으는 사람이 죽으면 나올 수도 있다고. 아, 그렇구나 싶었다. 솔직히 내가 죽고 나면 다 소용없는 물건들이었다.
매년 읽고 난 책을 도서실에 기증하는데도 여전히 13개의 책장을 꽉 채운 책들, 내 옷장의 반을 차지하는 스트릿 클로스(Street Cloths), 장식장에 가득 찬 곰들, 스토리지마다 가득 찬 부엌살림들… 그 어느 것도 나 말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 딸내미 말대로 앤틱 샵 한 코너를 빌려 돈이 될 만한 건 팔거나 굿윌에 기부할 것이다. 일순간 다 욕심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래서 누군가는 분서를 계획하고, 또 누군가는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을 것이다.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가 떠난 뒤 누군가 내 물건을 치울 때 누가 되지 않도록 조금씩 비우며 살아야겠다는 쪽으로 추가 기울기 시작했다. 철이 바짝 든 딸이 그랬다 wish와 want가 있다고. 돈은 잘 생각해서 지혜롭게 써야한다고. 맞는 말이다. 없어도 되는 것에 너무 많은 기운을 빼고 살았다. 한숨 고르고 나니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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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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