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직장인 김모씨는 항문 주위가 계속 가려워 안절부절못하고 지낸다. 아무리 긁어도 가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전에 없었던 통증까지 생겼다.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워 병원을 찾았더니 ‘항문소양증(항문 가려움증)’ 진단을 받았다.
신체 부위가 가려워 긁고 싶은 느낌을 주는 것을 ‘소양증(搔癢症)’이라고 한다. 소양증은 눈꺼풀 근처, 귓구멍, 콧구멍, 항문 등에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항문이나 항문 주위에 가려움증이 나타나는 것을 항문소양증이라고 한다. 항문소양증은 전 세계 인구의 45%가 한 번쯤 겪는다.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과체중이거나, 땀을 많이 흘리거나, 꽉 끼는 속옷·바지를 입는 사람에게 흔히 발생한다.
가려움증 발생 원인은 다양하다. 항문 주위에 비누나 세정제를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제품을 바를 때가 대표적이다. 치질(치핵, 치열, 치루)·변실금·만성 설사·건선·접촉성 피부염·아토피성 피부염 등이 있거나 요충·칸디다·옴·헤르페스·콘딜라모(곤지름)·베체트병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결핵 약이나 아스피린, 고혈압 약을 먹다가 발생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감과 긴장이 고조될 때도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항문 주위에 묻은 설사·무른 변·대변에 들어 있는 자극적 음식 성분이 피부에 영향을 줘 발생하기도 한다.
윤용식 서울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커피·차·콜라·초콜릿 등에 함유된 크산틴 성분이 항문을 자극한다”며 “일부 유제품과 토마토, 감귤류 등도 항문가려움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이 밖에 항문 주변을 심하게 닦거나, 제대로 씻지 않아 생기기도 한다. 항문이 가려워 긁다 보면 2차 손상된 항문 피부에서 분비물 등이 나오면서 가려운 증상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항문가려움증을 예방하려면 변비·설사가 생기지 않도록 평소 음식에 신경을 쓰고, 항문 주위를 항상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배변 후, 아침 기상 후, 잠들기 전에 항문 주변을 닦아준 뒤 항문 주변을 잘 건조한다.
수건이나 아주 부드러운 종이로 문지르기보다 부드럽게 두드려 준다는 느낌으로 닦는다.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고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되도록 한자리에 오래 앉지 말고, 항문 주위가 통풍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 변기에는 5분 이상 앉아 있지 말아야 한다.
주민숙 한양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형광증백제가 든 휴지로 배변 후 항문을 닦다가 항문 주위가 자극돼 항문가려움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쓰지 않는 게 좋다”며 “특히 착 달라붙거나 땀 흡수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속옷도 피하는 게 좋다”고 했다.
지웅배 고려대 안산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곰팡이에 감염됐을 때 임의로 연고제를 바르면 항문가려움증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치료에 앞서 피부 감염이나 염증, 피부병 등 가려움을 유발하는 질환이 무엇인지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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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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