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50개주로 이뤄진 나라다. 거기다 각주마다 수많은 시 등 지방 정부가 있다. 그러다 보니 선거가 없는 해는 말할 것도 없고 달도 거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선거가 있다. 이중에서 일반의 주목을 받는 것은 대선과 대선과 대선 사이 치러지는 중간 선거 정도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다. 지난 주 치러진 중간의 중간 선거 같은 것이 그것이다. 도널드 집권 2기 1년간의 평가 성격을 갖고 있는 이번 선거는 내년 있을 중간 선거의 전초전이자 풍향계로 주목받아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뉴저지와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뉴욕 시장 선거등이 포함된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우세가 점쳐진 건 사실이다. 이들 지역이 대체로 민주당 우세 지역인데다 대선 직후 치러진 선거는 대체로 야당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승리의 폭이다. 버지니아는 민주당의 아비게일 스팬버거가, 뉴저지 역시 마이키 셰릴이 압도적인 표차로 이겼다. 뉴욕에서는 34살짜리 사회주의자 회교도 정치 초년병 조란 맘다니가 시장에 당선됐고 가주에서는 주민 발의안 50이 2대 1로 가볍게 통과됐다.
민주당의 승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화당 텃밭인 조지아에서는 공공 서비스위원회 위원 자리 두개를 빼앗았고 펜실베니아에서는 세명의 민주당 대법원 판사가 모두 이겼다. 미시시피 주 상원 선거에서조차 민주당이 두석을 뒤집으면서 공화당의 2/3 수퍼 다수 의석이 깨졌다.
이번 선거에서 표를 던진 유권자 성향을 조사한 보고서들은 작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표를 줬던 청년층과 흑인, 라티노 등이 모두 민주당으로 돌아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스팬버거와 셰릴은 온건 중도파, 맘다니는 급진 좌파로 분류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똑같이 ‘먹고 사는 문제’(affordability)를 물고 늘어졌다. 유권자들이 작년 도널드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바이든 시절 인플레가 9% 대까지 치솟자 공화당에 표를 준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일반 미국인들의 생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인플레는 2%대에서 3%대로 오히려 올라갔고 직장 감원은 팬데믹 이후 최고 수준이며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거기다 연방 정부 폐쇄로 푸드 스탬프는 지급이 중단되고 항공기 운항은 축소되고 있으며 메디케이드 수혜 자격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오바마 케어 보조금 삭감으로 보험료 폭등이 예상되고 있다.
연방 공무원 대량 해고는 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흑인이다. 뉴스만 틀면 나오는 것이 수십년 동안 열심히 일하며 살던 사람들이 불법 체류자란 이유로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잡혀가 추방되는가 하면 이 와중에 시민권자들도 폭행당하고 체포되는 장면들이다.
지난 1년간 득을 본 사람은 주가 상승과 도널드 감세법의 최대 수혜자인 고소득 자산가들뿐이다. 미 주식은 상위 10%가 90%를 갖고 있고 감세 혜택도 대부분 이들이 가져간다. 도널드는 미국인들의 고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얼마전 마르라고에서 1920년대 ‘도금 시대’를 연상시키는 초호화 할로윈 파티를 열었다.
작년 선거에서 도널드 승리를 견인했던 연합체에서 소수계와 청년들이 이탈하고 있는 것과 때맞춰 도널드 핵심 지지 세력인 MAGA 집안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보수 싱크 탱크의 대표격인 헤리티지 재단의 파열이다.
사건의 발단은 MAGA 팟캐스터 터커 칼슨의 노골적인 친나치주의자 닉 푸엔테스 인터뷰다. 칼슨은 여기서 그를 비판하는 대신 반유대주의 독설을 전파하는 선전장을 제공했는데 이를 두고 일부가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인 케빈 로버츠는 칼슨을 옹호하고 나섰다. 푸엔테스의 주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를 축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헤리티지 연구원들이 집단 반발했다. 그런 반유대주의자를 감싸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로버츠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사표를 낸 것이다.
유대인 사위를 둔 도널드는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지만 MAGA 진영에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극도로 증오하는 세력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들이 싫어하는 게 이스라엘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도를 포함한 서남 아시아인은 물론 백인 빼고는 모두 열등하게 보는 성향이 강하다. 차기 MAGA 진영의 리더로 지목되는 JD 밴스의 아내가 인도계이고 보면 도널드 이후 MAGA 진영이 단합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 그러나 도널드는 과거 바이든이 그랬던 것처럼 고물가는 사기라며 제 갈 길을 고집하고 있다. 도널드 1기 집권 1년 후 치러진 선거에서의 민주당 승리가 2018년 중간 선거 압승의 예고였듯이 이번 선거도 내년 중간 선거의 전조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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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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