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와 첫 번째 임기 사이의 여러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 계층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었다. J.D. 밴스 부통령은 ‘전문가들’의 생각보다 우리의 상식을 믿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백신과 관련된 의료 전문가들의 견해를 연이어 뒤집고 있고, 팸 본디 법무부 장관은 개인에 대한 충성심보다 전문성을 중시하는 법무부 관리들을 줄줄이 몰아내고 있다. 스티븐 밀러는 비정부기구(NGO)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미국 문화혁명의 일환으로, 현재 미국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유능한 엘리트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다.
지난 수 십년간 아이비리그 졸업장과 특정 기술 및 훈련으로 무장한 이른바 능력주의 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면서 재계, 정부, 언론과 문화계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전문가 계층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접점을 잃은 채 어느결엔가 자만심에 빠진 기술관료 집단으로 변모한 것 또한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를 쏟아내기에 앞서 능력에 기반한 엘리트의 부상이 옳은 방향으로의 역사적 이동이었음을 기억하자. 그 전의 현실은 어땠는가? 당시에는 혈연과 가문, 종교, 명문사립학교와 클럽 등 학연의 연줄로 엮어진 ‘올드보이 네트워크’가 소속원들의 출세를 보장해주었다. 능력본위제(meritocracy)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았다. 능력과 학문적 탁월성에 바탕을 둔 승진제도가 확립됐고, 카톨릭, 유대인, 아시아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기득권층 내부로 진입했다. 능력주의는 혈통보다 능력을, 상속받은 재산보다 일을 중시했다.
능력주의가 지닌 문제는 양질의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동문 혹은 주요 기부자 자녀에게 입학 특례를 제공하는 레거시 입학이나 인종 할당제와 같은 비실력적인 제도를 축소하며, 더욱 엄격한 평가기준을 적용하고, 비전문적 업무기술에 대한 존중을 새롭게 확립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실력을 더욱 강조하고,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도록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능력주의를 매도하면서 이를 더 낡고, 조잡하며, 부식성이 강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바로 극부유층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노골적인 금권주의(plutocracy)다.
우리는 억만장자와 천만장자 각료들로 채워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정부를 갖고 있다. 어마어마한 부의 소유자는 무슨 일이건 훌륭히 해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된다. 엘론 머스크는 세계 최대의 갑부라는 단 하나의 사실만으로 전체 연방정부의 낭비를 줄일만한 능력을 지닌 적임자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지난 수 십년동안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확산방지책을 연구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무시했다. 오늘날의 일반적 사고방식은 “그들이 정말 그렇게 똑똑하다면 지금은 왜 부자가 아닌가?”로 요약된다. 반면 억만장자들은 만사에 능통한 만물박사로 간주된다. 심지어 일부 억만장자들은 데이트에 관한 신탁같은 조언까지 제공한다.
이같은 사고의 뒷면에는 오만함이 자리잡고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해상충이다. 지난 5월 스티브 위트코프, 트럼프와 그들의 아들들이 설립한 암호화폐 회사는 유나이티드 아랍 에미리트(UAE)의 국가안보보좌관 셰이크 타눈 빈 자예드 알-나히안이 지배하는 회사로부터 20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2주 후, 백악관은 미국의 최첨단 AI 칩에 대한 UAE의 접근권을 허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UAE측 협상대표는 타눈이었고, 이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백악관내 인사는 위트코프였다. 아무래도 수상쩍은 거래지만 당사자들은 이 두가지 결정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강변한다.
거의 패러디에 가까운 금권정치의 한 예가 민간 기부자들의 자금으로 신축되는 3억달러짜리 백안관 연회장이다. 기부자들의 재산은 연방계약, 규제결정, 담합금지법 집행, 관세와 수출 라이센스에 의해 좌우된다. 트럼프는 “미국인 납세자들이 경비를 단 한푼도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대단한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거대기업에 특혜를 요구할 때에는 특별대우, 세제혜택과 규제완화를 댓가로 지급해야 한다는 게 역사가 일러주는 교훈이다. 게다가 실제로 비용을 지급하는 주체는 납세자들이다. 차라리 납세자들이 연회장 건설에 직접 자금을 댄다면 상대적으로 돈이 덜 들어갈 것이다.
현재 첨단기술업체를 이끄는 억만장자들은 그들이 누리는 백악관 접근권을 기꺼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한 접근권이나 정부의 특혜에 기대지 않고, 대통령의 개인적 허영에 자금을 지원할 필요없이 회사를 키울 수 있는 것이야말로 미국을 혁신하는데 필요한 핵심요건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이 누리는 접근권의 댓가는 백악관 억만장자 클럽에 가입할 돈과 인맥을 갖추지 못한 채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차고에서 땀흘리며 고생하는 젊은 사업가들이 지급하게 될 것이다.
이미 초부유층에게 큰 혜택을 주는 세법으로 인해 오늘날의 재벌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세습 엘리트로 변할 것이고, 각 엘리트 가문은 대대로 권력과 특권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미국적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반대다. 토마스 제퍼슨에게 사회를 세우는데 있어 자연이 가르쳐 준 “가장 소중한” 교훈은, 사회가 “덕성과 재능”에 기반한 “자연적인 귀족제”에 의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훌륭한 정부는 이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지도자들을 선택한다. 잘못된 모델은 “부와 출생”에 근거한 “인위적 귀족제”였다. 제퍼슨은 이같은 시스템이 미국에서 힘을 얻지 못하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맞는 얘기다.
<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 CNN ‘GPS’ 호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