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는 요즘 일종의 문화 쇼크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사업에만 전념해 오다가 한인 단체장으로 변신한 후부터 겪고 있는 증세다.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 결혼 청첩장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안 갈 수도 없어 가는데 가서는 주눅이 들 때가 적지 않지요."
K씨가 최근에 참석한 결혼식은 선상 결혼식. K씨로서는 처음 가 본 선상 파티인데다가 고급 포도주며 음식이며 온통 잘 모르는 것뿐이었다. 이날의 파티는 1인당 250달러짜리이고 R.S.V.P.로 500명을 초청했으니 혼수는 별도로 치고 파티 비용만 10만달러가 훨씬 넘었다는 게 K씨가 나중에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다.
L씨는 최근 선배로부터 딸 결혼식에 와달라는 청첩장을 받았다. 그 선배는 뷰티 서플라이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 자영업자. 예식장소가 자택으로 돼 있어 L씨는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지만 초청해 ‘조촐하게’ 치르는 결혼식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집이 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디 보통 집이래야 말이지요. 1,000만달러짜리 집이래요. 파킹 정리원만 8명을 고용해 하객들의 차를 발레 파킹해줘요. 100달러를 봉투에 넣어 가지고 갔는데 얼굴이 화끈해지는 느낌입니다. 초호화판 장식에다가 그 날 서브된 음식, 술만 해도 1인당 최소 수백달러는 될 것 같아요. 밥값도 못 낸 셈이지요." L씨는 얼마전 교회에서 치른 맏아들 결혼식과 자꾸 비교돼 더 씁쓸했다고 했다.
1인당 200달러짜리 결혼 피로연, 고급 유람선상 결혼 파티, 심지어 1인당 500달러짜리 결혼 파티등 이야기가 심심지 않게 들린다. 커뮤니티의 일부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 풍속도로 한인 사회의 경조사가 인플레에 인플레를 거듭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80년대만 해도 한인들의 결혼식은 비교적 소박한 분위기에서 치러지는 게 보통이었다. 예식 장소는 교회가 상식. 하객은 신랑, 신부의 가족과 극히 제한된 친지가 고작이었다.
이같이 교회 중심으로 고착된 결혼 풍속도가 일부 계층에서 변질되기 시작한 시기는 90년대 후반부터다. 관혼상제를 요란하게 치르는 한국형 관행이 이민 사회인 LA 한인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다. 경기가 되살아나 ‘거품현상’까지 일기 시작한 요즈음 ‘결혼식의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유행이 급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해서 특급 호텔, 호화 유람선 등이 결혼 예식장으로 일부 계층에게 각광을 받기에 이르게 됐다는 게 사계에 밝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K씨는 결혼 청첩장을 받으면 몹시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그저 안면 정도나 있는 사람의 청첩장이 많아서다. 안 가면 의절을 한 것으로 받아들이겠고 일일이 가자니 너무 많아서다. 얼마를 부조해야 할지 모르는 게 또 다른 불안 요소다. 오라는 결혼식마다 호화판이어서 도대체 얼마가 적정선인지 대책이 안 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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