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국민 음식으로 불려도 좋을 짜장면은 1882년 임오군란과 함께 파병된 청나라 군사를 따라온 40여명의 중국 상인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조선과 가까우면서 기근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들이 산동 요리의 하나였던 ‘작장면’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것이 ‘짜장면’이 된 것이다.
‘작장면’은 ‘장을 볶은 면’이란 뜻으로 볶은 장을 뿌려 채소와 비벼 먹는 일종의 비빔면으로 한국인 먹는 짜장면과는 다르다. 이것이 지금의 짜장면이 된 것은 1950년대 화교 왕송산이 만든 ‘사자표 춘장’이 등장하고부터다. 전통 춘장에 캐러멜을 첨가시킨 이 춘장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 잡으면서 지금도 춘장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짜장면은 원래 중국 음식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전문가들은 국수라는 음식 자체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됐으며 이것이 서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가장 오래된 국수의 흔적(기원 전 2000년)은 서역으로 가는 길목인 중국 북서부 감숙성과 청해성 인근 라지아에서 발견됐다. 또 이곳에서 멀지 않은 산서성은 ‘국수의 수도’로 불릴만큼 다양한 국수가 존재한다.
또 짜장면 소스의 원료인 콩은 만주가 원산지다. 북경식 짜장면은 노란 콩을 원료로 한 ‘황장’, 동북식 짜장면은 한국의 메주와 비슷한 ‘동북대장’을 쓰는데 둘 다 콩을 기반으로 하는 것은 같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짜장면 한 그릇에 이런 복잡한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짜장면 다음으로 사랑받는 짬뽕의 역사도 비슷하다. 요리학자들은 이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19세기 일본에 정착한 복건성 출신 화교 진평순을 지목한다. 1899년 그가 고향 요리인 ‘탕육사면’에 해산물 등을 추가해 개발한 것이 일본 짬뽕의 원조 ‘나가사키 짬뽕’이 됐고 이것이 일제 시대 한반도에 퍼지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얼큰한 맛이 더해져 오늘날의 짬뽕이 된 것이라고 한다. 진평순이 문을 연 ‘시카이로’는 아직도 그 4대손이 나가사키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인 1인당 연 소비량 70개로 세계 1위인 라면은 또 어떤가. 라면의 원래 이름은 ‘납면’으로 밀가루 반죽을 길게 잡아당겨 만들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으로 건너가 ‘라멘’이 됐고 이것이 다시 한국에 들어와 라면이 된 것이다.
일본 라멘은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한 ‘하카타 라멘’과 삿포로 근처에 널리 퍼진 ‘미소(일본 된장) 라멘’으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하카타 라멘’은 돼지뼈로 국물을 낸다고 해 ‘돈코츠(돼지 뼈라는 뜻) 라멘’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미소 라멘’은 돈코츠 육수에 된장을 풀어놓은 듯한 맛이지만 미소 라멘의 원조로 불리는 삿포로의 ‘아지노 산페이’(‘맛의 산페이’라는 뜻으로 산페이는 창업자 이름)라는 식당에 가보면 채소, 그중에서도 양파를 잔뜩 넣어 일본식 오니언 수프를 먹는 기분이며 가격도 1천엔으로 아주 싸다.
이런 라멘들은 요리법이 복잡해 집에서 만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58년 닛신 식품 회장 안도 모모후쿠가 만든 인스턴트 라멘이다. 간편한 조리법과 싼 가격으로 일본인들을 사로잡은 이 제품 덕에 안도는 재벌이 됐고 2007년 96세로 사망할 때까지 매일 라멘을 먹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1963년 삼양 식품이 일본 기술을 도입해 처음 인스턴트 라면을 만들었다. 역시 같은 이유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라면의 대명사가 됐던 삼양은 1989년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관계자들이 검찰에 기소되는등 수난을 겪었고 1994년 이들에게 대법원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려 명예는 회복됐으나 회사는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입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다가 2010년 창업주의 며느리이던 김정수 부회장이 매운 맛에 주목하며 2012년 ‘불닭 복음면’을 내놨고 이것이 전세계적인 히트를 치며 회사를 기사회생의 궤도에 올려놨다. 한때 10원대로 떨어졌던 삼양라면의 주가는 지난 2년 사이 10배가 오른데다 지난 5월에는 100만원을 돌파하며 ‘황제주’(100만원 이상주) 자리에 등극했다. 삼양은 매출의 80%가 해외 시장에서 나올 정도로 외국에서 인기인데 해외 매출은 2년 사이 3배가 늘었지만 아직도 초기 단계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의 라면 수출은 미국과 유럽 등 전통 시장뿐 아니라 신천지인 중동으로도 급속히 늘고 있다. 한국 농수산 식품 유통공사 발표에 따르면 올 1/4분기 중동 지역으로의 라면 수출은 1천836만 달러로 전년 대비 44%나 늘었다.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짜장면, 짬뽕, 라멘 등을 전수받은 한국의 라면이 국수의 본산 중동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음식은 특정 지역의 전유물이 아니라 얼마든지 창조적으로 변형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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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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