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갔던 제비는 이제 박씨를 물고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밭두렁마다 농약이 넘치고 농가 처마도 연탄과 기름 내음으로 진동하는 한국 농촌에 우리의 정감 어린 길조는 오고 싶어도 못 올 지경이 됐다. 텃새들의 텃세는 왜 그리 심한지. 이제는 해조(害鳥)로 전락한 토종 까치들의 등살이 한여름을 나기 위해 다리를 쉬어 가는 철새들을 몰아 내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또 다른 철새들’의 떠남이 줄을 잇고 있다. 다름 아닌 외국 기업들이다. 달러가 고갈된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어 어렵게 유치한 외국기업들마다 보따리를 싸 떠나고, 투자라도 해 볼까 기웃하던 외국 자본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관치와 규제와 뇌물이라는 한국판 공해(公害) 때문이다. 미국계의 다임러 클라이슬러 한국지사 대표인 웨인 첨리는 이렇게 진단한다. "기업이 투자하는 것은 결국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인데 한국에 들어와서 고생만 하고 돈도 못 벌고 차별대우만 받으면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어떤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
첨리의 불평은 그래도 점잖은 편에 속한다. 사업을 걷어치우고 내달 한국을 떠나는 한 외국 투자가, 정확히 말해서 재미동포 사업가의 표현은 보다 직설적이다. "시장경제 좋아하네. 하나에서 열까지 관이 간섭하고 방해하는 이런 나라에서 무슨 투자고 장사를 하란 말인가. 관리들의 부패상-이건 당해 본 사람이나 안다. 인허가나 관급공사를 따내려면 실적이고 뭐고 없다. 층층이 돈다발을 디밀어야 돌아가는 판이니 투자한 돈을 날리더라도 얼른 발을 빼는 게 낫다는 결심을 했다."
지난 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감 넘친 어조로 말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고 국가를 개혁해 선진 조국을 건설하겠다." ‘DJ 노믹스’라는 새로운 정책아래 국가 경쟁력을 5년내 말레이시아 수준인 세계 15위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집권 3년 반, 그러나 지금 김 대통령은 두 방향의 실험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민주주의 항목은 제쳐놓더라도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전한 관치금융과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 인허가 규제 등 반 시장경제 요인들로 해서 경제계는 아우성이다. 게다가 신악이 구악을 뺨치는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기업과 민초들을 울리고 있다.
국가경쟁력 15위 진입? 그것은 말짱 허언이 돼가고 있다. 최근 IMD(국제경영개발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심의 대상국 49개국 중에서 한국은 28위로 밀려났다. 말레이시아는커녕 후발 개발도상국들인 중국 헝가리 칠레에도 뒤지는 후순위로 밀려난 것이다.
김 대통령은 얼마 전에도 벤처 현장을 찾아가 "우리 경제의 살길은 이곳에 있다"며 벤처 육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최신호는 불경스럽게도 DJ의 말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은 벤처를 창업하기가 매우 어려운 나라다"라는 논평뿐 아니라 자료도 내놓았다. 벤처를 설립하는데 소요되는 국가별 통계를 보면 호주 3일, 미국 7일, 싱가포르 36일. 한국은 48일이 걸려 25개국 중 18위라는 후순위로 역시 마크됐다. 그러나 뇌물을 잘 쓰면 미국보다 더 빨리 돌아가는 곳이 한국이라는 것을 포브스는 몰랐던 것일까.
"기업하기 힘들다"는 푸념은 외국인들만의 불만이 아니다. 텃새들도 못해 먹겠다고 아우성들이다. 각종 정부 규제를 풀어달라는 재벌들의 주장이야 IMF의 원죄(?)로 해서 설득력이 덜하다고 치자. 하지만 외국 기업, 그리고 우리의 중소기업이나 벤처 현장의 반문은 이유 있는 외침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던 대통령님의 약속은 어디로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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