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전 캐나다를 다녀왔다.
캐나다의 제일 서쪽에 있는 밴쿠버에서 시작해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얼을 거쳐 북미 대륙의 맨 동쪽지점이란 표지판이 서있는 뉴펀들랜드까지 갔으니 캐나다 대륙을 동서로 횡단한 셈이다. 출발 때는 9일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곳을 돌다보니 그야말로 훌쩍 다녀온 기분이다.
한인사회 취재를 위한 터라 곳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가진 캐나다에서의 시간들이 아쉬움을 더한다. 밴쿠버 스탠리 공원에서의 커피와 오타와의 화려한 단풍, 뉴펀들랜드의 조약돌 내음이 모두 곁에 있는 듯하다.
많은 아쉬움들 속에서도 LA로 돌아오기 전날 밤 만난 뉴펀들랜드의 코리안 슈바이처 김득추(71) 박사를 잊을 수 없다. 그는 평생을 조국을 잊고 살아온 사람이지만 한 평생 사랑을 베풀어 캐나다에 한국을 심은 사람이다.
그는 1962년 당시만 해도 거의 개척이 되지 않아 캐나다에서도 오지로 통하는 뉴펀들랜드에 정착해 40년간을 사랑과 의지로 인술을 베풀어왔다. 지난 95년 세인트 존스 메모리얼 대학 병원을 끝으로 현직에서 은퇴한 후 지금도 이 지역 한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은 한번쯤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코리안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평북 선천이 고향인 김 박사는 15세 때 인민군 징용을 피하기 위해 잠시 서울 삼촌댁에 왔다가 영영 부모와 헤어졌다. 금방 돌아간다는 세월이 태평양을 건너고 캐나다 원주민과 함께 한 50년의 세월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깡통을 줍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충당하던 고학시절과 빈손으로 도미해 접시닦이로 시작한 미국에서의 유학생활, 육지와의 불편한 교통으로 생필품마저 부족했던 뉴펀들랜드에서의 초기 어촌생활 등은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했다. 뉴펀들랜드는 지금도 토론토에서 비행기로 4시간30분이 걸린다. 요즘은 한인 유학생까지 있어 한인가족만 16세대가 되지만 그 당시는 캐나다 의사들도 부임했다가 한두 달이면 떠나가 버리던 곳이다.
캐나다 정부의 낙도 및 오지 의사 확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곳에 온 김 박사도 그간 도시의 큰 병원으로부터 많은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라며 고집스럽게 뉴펀들랜드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그의 이같은 고독한 사랑의 인술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어온 ‘너의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나눠 주라’는 교훈 때문이다. 그는 이 나눔의 철학을 생활모토로 삼고 살아왔다고 했다. 이를 실천하다보니 이웃이 가족이고 가는 곳이 내 땅이라 외로운 마음도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그동안 잊고 살아왔는데 오늘 기자 양반 때문에 아버지 생각이 나네.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고향마을이 어떻게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지. 잘 다녀오라며 배웅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생각이 나고…. 옛날에 벌써 다 돌아가셨을 거야."
이야기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자 노 의사의 눈에는 어느새 하얀 이슬이 맺히고 만다.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한 그는 애써 얼굴을 돌려 벽에 걸린 장성한 아들딸들과 캐나다인 부인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동안 내조해준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나눠 주라’
나라 안팎을 가릴 것 없이 세상이 온통 살육과 폭력으로 뒤범벅되고 있다. 낯선 외국 땅 오지에서 일생을 보낸 노 의사의 이 생활모토는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큰 말씀이다. 이제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임을 실감하는 11월이다. 올해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이웃을 만나 얼마만큼을 주고받았는지 되새겨보자. 이기와 사욕으로 자신만을 움켜쥐는 이 시대에 나눔과 베풂으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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