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이가 70대에서 80대인 노인들은 어렵고 비참했던 나라 형편에서 태어난 분들이다.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허기를 안고 크기도 서러운데 열 몇 살만 되면 징병이다 노동력 동원이다 하는 착취정책에 시달리며 살았다.
희망 없이 그렇게 지내다가 남의 도움으로 갑자기 해방이 된 우리나라.
독립국가로서의 기본작업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해방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미군정 감독 아래 밀가루 배급에 줄을 서야하는 기아에 시달렸고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는 사상싸움에 그나마 최저 생활여건도 빼앗기다시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전쟁사에 남는 한국동란이란 큰 전쟁을 또 겪으면서 수많은 동족과 외국에서 파병된 군인들이 죽었다. 그것을 겪으면서 70대 80대 노인들은 짧은 인생을 토막내며 살았다.
나는 식당에서나 길에서 그만한 나이의 노인들을 보면 아버지를 연상한다. 산 넘어 산 같은 나라 사정에 시달리면서도 처자식을 상처 나지 않게 살리려는 몸부림에 그 몸과 마음이 얼마나 어려웠고 힘이 들었겠는가. 그 분들은 최선에다 최선 하나를 더 얹고 산 분들이다.
나는 아버지란 사시사철 몸도 아프지 않거나 절대로 아파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쉬는 것을 모르는 사람, 명쾌하게 웃는 것도 모르는 철과 같은 사람으로만 알았다. 가난한 살림에 숨이 찬 밥상이 들어오면 눈치 빠르고 손이 빠른 형제가 한술이라도 더 차지하는 벼락치기 경쟁을 아버지는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어디에서 뭘 많이 드시고 와 배가 부른 줄만 알았었다. 그리고 일만 좋아하는 까닭에 집안에서도 앉으나 서나 일만 자청해서 하시는 줄만 알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고 긴 공무원 생활에서 노후 생계준비가 없는 한국적 은퇴를 하셨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빨리 크기를 바랐지만 아버지는 늙지 않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자식들이 많아도 노후 생계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한국에서 나이만 한 짐 지고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다. 비교적 노후대책이 잘 짜여진 미국에서 거르지 않고 나오는 생계보조비와 의료혜택에 목숨을 맡기고 덧없이 떠밀려 가고 계신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천에 꽃이 피나 갈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나 계룡산 갑사 아래 하대리 언덕에 홀로 누워 계신 당신의 아내가 그립지 않겠는가. 봉분의 잔디라도 잘 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도 효자인 미국의 생계보조비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깊은 정을 가슴속에 꾹꾹 누르고 덧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며 산다.
무심히 지나치는 노인들이나 아버지에게는 사랑이란 말이 없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지갑 속에는 주민등록증과 돈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여시는 지갑을 곁눈으로 무심히 보았다. 거기에는 오래된 내 어머니의 사진이 낡은 플래스틱 뒷면에서 예전의 그 얼굴 그대로 아무런 불평 없이 웃고 계시었다.
아버지도 사랑하는 여인이 계시었고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은 노인들이 그러하실 것이다. 지금 나의 아버지는 플러싱의 한 양로원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지낸다. 사명감과 기도와 봉사정신이 없으면 아무리 봉급이 많아도 치다꺼리를 당해내지 못하는 양로원 직원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잘 지내고 있다.
모든 노인들의 눈동자를 보자 그 분들의 눈동자는 고향으로 뻗쳐있는 외길이요 그 분들의 마음은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 나선 외길임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먼 훗날 내 자식들도 노인이 된 내 눈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리라 짐작하며 창 밖의 빈 하늘을 아픈 마음으로 오늘은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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