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이야기 저런이야기
▶ <박봉현 편집위원>
북한에서는 자유로이 이사할 수가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다른 동네로 옮겨보려 해도 당국으로부터 승낙을 받지 못하면 살던 곳에 뿌리박는 수밖에 없다. 1947년 선포된 북조선 인민위원회 결정 제57조 ‘공민증 교부 사무규칙’은 주민들의 거주이전을 정부 허가사항으로 못박았다. 살던 곳을 떠나려면 공민증이나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증’ 없이 남의 동네에서 새 살림을 꾸리면 거주지 등록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형법 제229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 진다. 뒤늦게 북한이 1998년 개정헌법 제75조에서 ‘공민의 거주 및 여행의 자유’를 신설했지만 ‘공민증 교부 사무규칙’과 형법 제229조가 삭제되지 않는 한 개정헌법의 정신이 얼마나 지켜질지 의문이다.
두말할 것 없이 허가제보다는 신고제가 훨씬 낫다. 가슴 졸이며 당국의 판정을 기다릴 것 없이 내 마음대로 결정한 뒤 통보만 하면 되니 당연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거주지를 바꿀 수 있다. 거주이전 신청서를 제출해 당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100%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거주지를 변경했을 경우 해당 관청에 신고는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허가제 대신 신고제가 통용되고 있다. 가족 중 남자가 있으면 병역문제가 걸려 신고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게으름을 피웠다가 징집통지서나 예비군 훈련통지서를 제 때 받지 못해 기피자로 몰리면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게 아니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 낸 현실이다. 일제하의 식민지 생활과 독재하의 억압생활에 익숙해 온 터라 거주이전 신고제에 대해 볼멘소리를 내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이 정도 제약은 참을 만하다는 것이다.
미 연방이민국이 “영주권자를 포함한 비시민권자는 연방이민법 265(a) 조항에 따라 거주지 이전 후 10일 내 이 사실을 이민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문화된 법규를 다시 들고 나와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있다. 그동안 신고를 하지 않아도 추방되거나 벌금과 구류형을 내리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으름장을 놓고 있다.
얘기는 이렇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팔레스타인계 영주권자가 최근 교통위반으로 적발돼 조사를 받던 중, 테러의혹을 풍기는 자료를 소지하고 있다가 법정에 서게 됐고 이 와중에 이민국이 그를 추방시키기 위해 먼지 덮인 법규를 끄집어내면서 이슈화됐다.
거주이전 신고를 하지 않은 대다수 영주권자들이 당장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이 법규가 대단한 속박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자유의 모델국가인 미국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파리 들어올까 창문을 꼭꼭 닫으면 숨이 막히게 마련이다. 얼음장같은 테러정국이라지만 자유의 여신상 마저 인상을 찌푸릴 일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