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익환 칼럼
▶ - 흙 단지와 족보와 기도 -
최초의 이민선 겔릭호가 출항했던 제물포 항구를 100년만에 찾아간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의 후손인 문송분(80) 할머니가 지난 12월 22일에 인천항을 밟았다. 눈물어린 말끝에 나온 말은 세 가지.
“여기가 할아버지 아버지가 떠났던 바로 그 곳인가요? 그때도 오늘처럼 바람이 찼겠죠?"
“미처 족보를 챙길 틈도 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민선을 타는 바람에 고향이 어딘지 몰라 갈 수도 없고, 사진신부로 시집온 어머니 고향도 아딘지 몰라요.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 있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미국 사람들에게 괄시 받는다고 자식들에게 한국말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하지 못하게 한 것이야”
사람에게 많은 감동을 준 알렉스 헤일리의 가족소설 ‘뿌리’(Roots)에 뒤이어 근자에 베스트셀러가 된 가족소설 ‘케인강’의 영향으로 요즘 미국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가계(家系)를 조사하고 족보(族譜)를 만드는 일이 분주해졌다.
‘케인강’이 출판된 동기와 내용은 이렇다. 미국의 대표적 IT 회사인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부사장이었던 라리타 타데미는 10여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가족사 찾기에 나섰다. 그녀가 추적한 것은 어머니와 그 어머니, 또 그 어머니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모계(母系) 혈통이었다. 그녀가 도달한 초기 가족사의 현장은 1830년대 미국 루이지애나주 케인강변의 한 농장이었다. 그로부터 타데미의 할머니들이 100여년을 걸쳐 대를 이어가며 겪은 노예생활과 그 질곡을 벗어나기 위한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이 ‘케인강’에 담겨 있다.
이제 ‘뿌리’라는 낱말이 낯설지 않게 들려 오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어떤 의미이든 내 근본을 분명하게 알고 찾자는 데 있다. 따지고 보면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조상 없는 후손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몸은 나 한 사람의 외딴 잎새가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엽(枝葉)인 것이다.
한 겨레가 나라는 잃어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가족사나 족보는 한번 잃어버리면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선조 들은 가문의 줄기를 대대로 족보에 실어 자손에게 소중하게 전수하였다.
그런데 이민 온 우리는 우선 생존해야 하는 당면 과제 때문에 전통이니 문화니 습관에 대하여 정신 쓸 사이가 없는 와중에 1.5세와 2세들은 여과(濾過) 없이 미국문화와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다가 2.5세, 3세로 내려가면서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자신과 자신의 본래문화 그리고 전통을 찾기 시작하고 뿌리를 알아야 하겠다는 자각이 생긴다. 나는 과연 누구의 자손이며 누구의 혈통인가.
다시 말하면 1세는 고국을 그리워하고, 2세는 고국에 대해 그리 개의치 않으며, 3세대에 가면 모국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는 열기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속담에 “아무리 큰 나무도 그 잎은 그 뿌리 위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가문의 뿌리를 추적하여 조상과 자신의 혈통을 연결함으로서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 싱싱한 자신의 가문의 열매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족보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재래식 족보는 이름이며 배우자의 성씨, 생·사 연월일, 관직, 분묘 소재지 등이 한자로 되어 있다. 이것을 알기 쉽게 한글과 영어로 번역하는 일, 이것이 우리 1세들이 기본적으로 할 일이다.
그리고 시조부터 자기 대까지 대수, 이름, 배우자 성명, 생·사 연월일, 대표적인 관직명·직업만 따로 발취하여 도표식으로 “우리 가계 일란표"(The Chart of Our Genealogy)를 작성하여 액자에 넣기도 하고, 이것을 영상(映像)과 가훈(家訓)과 함께 PC에 입력해 두면 자손을 위해 좋은 유산이 될뿐더러 ‘현대식 PC 족보’가 될 것이다. 물론 부계(父系)와 모계(母系)를 모두 수록해야 한다.
족보의식이 뚜렷한 나라는 우리 나라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족보민족이라고 할만큼 족보의식이 뚜렷하여 나라 없이 천여년을 유랑하면서도 조국의 흙을 담은 ‘흙 단지’와 ‘족보’를 잠든 자녀 머리맡에 놓고 ‘기도’를 했다.
미국도 족보국가로 칠만하다. 미국족보학회는 1895년에 창립되어 미국내에 수백 개소의 지회를 갖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역사가 국사(國史)이듯이 한 집안의 역사는 족보(族譜)이다. 우리와 자손을 위해 우리 모두가 족보를 갖추어 이 족보를 통해 자신의 소속감을 확인하고 조상의 슬기를 배우며 가족에 대한 또다른 사명감을 갖도록 하여야 하겠다. 참고 : 보학총람(譜學總覽) 한얼 보학연구소
(www.familysearch.org). /ikhchang@aol.co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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