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 <종교전문기자. 목회학 박사>
앞뒤로 막힌 좁은 엘리베이터 공간에서 흉기를 휘두르며 돈을 내 놓으라는 복면강도.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꿈속에서도 꾸지 않았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나간 일이라 쉽게 쓰는 것 같지만 당해본 사람은 알리라. 정작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때 그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지난 21일 금요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기 전. "쨍그렁!" 화장실에서 사기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달려가 보았다. 양치 물 컵으로 사용하던 사기 컵이 아내의 실수로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였다. 깨진 손잡이는 변기로 빠져 버리고 컵은 바닥으로 뒹굴었다. "이상하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하며 깨진 컵을 버리고 출근했다.
금요일은 즐겁다. 한 주일 내 일하다 쉬는 주말이 다가오기에 그렇다. 하루를 마감하고 정각 오후 7시 회사를 나왔다. 써니사이드가 집이라 회사에선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웬디 식당 건너 45가 길가 빈곳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46가 집으로 향했다. 초저녁이다. 그래도 밤이다.
퀸즈 블러버드를 지나 아파트 앞까지 올 때만해도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22년 동안 살아온 동네다. 13년 동안 살아온 아파트다. 현관문을 키로 열고 로비로 들어섰다. 바바리코트에 왼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있었다. 로비엔 초저녁답지 않게 아무도 없었다.
무심히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들어가 6층을 눌렀다. 스르르 문이 닫치기 시작해 거의 다 닫힐 순간이었다. 순간 문이 다시 열리며 한 사람이 급히 들어왔다. "아파트 사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들어온 사람은 복면을 한 덩치 큰 강도였다. 그는 흉기를 나에게 바짝 대고 "Give me money!"(돈 내놔!)라고 외쳤다. 필름이 끊기는 순간이었다.
’찰라’ ‘무의식’의 세계가 나를 대항으로 행동 짓게 했다. 죽느냐 사느냐란 생각조차 없다. 1층부터 2층 사이.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격투는 일방적이었다. 흉기를 든 건장한 청년. 바바리코트에 가방을 멘, 활동이 제한된 50대 남자. 얼마나 찔리고 맞았을까. 2층에서 지갑을 뺏은 강도는 달아났다. 강도의 마지막 발차기에 뒤로 넘어진 나는 일어나 엘리베이
터 밖으로 나왔으나 강도는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2층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러 911 신고를 부탁했다. 흉기로 찔린 왼쪽 귀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굴과 와이셔츠, 바바리코트는 피로 범벅이 되었다. 1층 로비로 내려오는데 계단에 강도가 흘리고 간 것들이 버려져 있었다. 사회보장카드와 건강보험카드, 가족사진 등이었다. 지갑과 지갑에 있었든 돈과 운전면허증 등은 없었다.
갑자기 몰려든 경찰차와 구급차로 인해 동네는 큰 구경거리가 생겼다. 구급차에 타기 위해 아파트를 나오니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 쳐다본다. 경찰 질문에 답한 후 구급차에 실려 엘머스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조치와 엑스레이를 찍고 새벽에 귀가했다. 이튿날부터 온 몸이 아파왔다. 눈과 귀, 가슴 팔 다리 등에 시퍼런 멍이 퍼지기 시작했다.
강도 맞은 소식이 신문으로 알려졌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전화가 왔다. 그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용감하다" "겁도 없다" "바보다" 등이다. 그러나 모두의 반응 중 하나로 통일되는 말이 있었다. "천만다행"이다. 천만다행이란 "생명엔 지장이 없으니 다행"이란 뜻일 게다. 스스로도 "하늘이 날 도와 생명은 건졌구나"라 생각됐다.
하늘이 도와주었다는 것은 ‘찔림’과 ‘타격’이 급소를 피해주었다는 것을 뜻한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늘 접해왔던 일이다. "강도를 만나면 대항하지 말라!" 복면강도가 엘리베이터에 들어왔을 때와 그가 지갑을 빼앗아 달아날 때 만 기억된다. 그 안의 과정 즉, 찔리고 맞는 순간 순간은 거의 기억 나지 않는다. 무의식의 세계가 나를 행동 짓게 했나보다.
흉기에 찔린 상처는 아물어간다. 그러나, 후유증은 있다. 발로 채인 가슴의 통증이 장난 아니다. 다시 의사를 만나 진단했더니 가슴 치료는 8주 정도가 걸린단다. 한 주에 두 번 정도 병원에 와 치료를 받으란다. 위험은 어느 곳, 어느 시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당하기 전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혼자 걸을 때엔, 뒤와 주위를 돌아보는 습관도 필요하다. 눈에 시퍼런
멍을 하고 회사에 출근했더니 "이라크전에 참전하고 돌아왔냐?"고 한다. 사기 컵이 깨지던 날 밤, 내 생명은 다시 한 번 태어났다.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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