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여행 - 경북 영양군 수하리 ‘영양국제밤하늘공원’
서울에서 버스터미널까지 4시간 30분, 관내에 고속열차는커녕 일반열차 정차 역도 없다. 현지 주민들은 “바다 한 면 접하지 않는 내륙의 섬 같은 곳”이라고 한다. 망망대해가 아닌 첩첩산중의 섬. 이곳까지 서울, 인천, 부산에서 사람들이 기꺼이 행차한다. 여기는 경북 영양군, 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빛공해, 대기오염으로 희미해진 밤하늘 별천지가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린다. 전국에서 가장 어둡고 맑은 하늘로 전국 유일, 아시아 최초 ‘다크 스카이’ 인증을 받았다. 오지라서 가기 힘들지만, 오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다.
■ 국제적으로 인증받은 전국에서‘가장 어두운’ 밤하늘
‘영양 별놀이’의 중심가는 영양국제밤하늘공원이다. 영양군 수비면 수하리 일대 390만㎡의 부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빛공해, 대기오염이 없어 밤하늘이 맑고 어둡다. 태백산맥에 폭 안겨 있어 인근 도시의 빛은 물론 지평선 인근의 햇빛, 달빛도 가려진다.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는 반딧불이천문대, 반딧불이생태공원·숲, 일부 주거지역(오무·송방마을)이 부지 내에 있다.
2015년에 국제밤하늘협회(DarkSky International)로부터 다크 스카이 보호구역 은등급 인증을 받았다. 금등급은 문명의 손길이 아예 닿지 않은 수준의 장소를 선정하기에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이다. 당시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이었다. 현재는 일본, 중국, 대만 등 6곳이 추가로 인증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유일하다.
‘전국 최고의 명당’에서 별을 보려면 적지 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영양버스터미널에서 차량으로 30분 더 이동해야 도달할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인근 숙박시설은 공원 내부 펜션뿐이다. 2~8인 객실이 22실 마련돼 있는데, 소형 객실은 인기가 많아 미리 예약해야 한다. 주말·연휴 등 성수기에는 대형 객실조차 예약하기 어려울 수 있다.
별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상이다. 제아무리 별빛 명당이어도 하늘이 흐리면 도리가 없다. 내륙산간 지방은 날씨 변덕이 심해 오전 예보와 오후 날씨가 다를 수 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공원을 찾은 날도 당일 오전까지 관측예보가 ‘좋음’이었지만 오후 들어 ‘불가’로 바뀌었다. 결국 그날은 밤에 많은 비까지 내렸다.
다음 날 예보는 여전히 ‘좋음’ 상태였기에 하루만 더 믿음을 가져보자는 마음으로 주위 관광지를 둘러보며 기다렸다. 좀처럼 걷힐 것 같지 않던 구름이 오후 4시를 지나서야 자취를 감추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서야 다시 밤하늘공원으로 향했다.
반딧불이천문대 공식 관측 프로그램은 오후 8시, 8시 40분, 9시 20분 하루 3회 진행된다. 각 차수 20분 전에 천체투영실에서 관측하게 될 별자리와 천체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고 관측실로 이동한다. 달의 주기에 따라 가장 인기가 많은 차수가 다르다. 달이 늦게 뜨고 빛이 약한 그믐쯤은 하늘이 충분히 어두워진 늦은 시간대가 좋지만 보름쯤은 1차 관측이 가장 좋다. 천문대와 공원을 둘러싼 산맥이 천연 차광막이 돼 밝은 달이 뜨는 시간을 늦춰주기 때문.
취재일도 달이 거의 차오른 시점이었다. 한 차수 최대 관측 인원은 40명. 관측 프로그램 발권 시간인 오후 7시 30분이 되기 한참 전부터 천문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던 탓에 1차 관측은 금세 매진됐다. 이날 2차, 3차 관측 사이에 산맥 너머로 달이 떠올랐으니 미리 와 기다리기를 잘했다.
천체투영 관람을 마치고 보조관측실로 이동해 해설사의 간단한 설명과 이용안내를 듣고 본격적인 관측이 시작된다. 보조관측실 지붕이 열리자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출입구 방면부터 일제히 터져 나오는 탄성. 망원경 렌즈를 굳이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어제 비가 내렸고, 내일부터 또 비 예보가 있어 오늘은 대기 중 습도가 높습니다. 습도가 높아 평소보다는 별이 조금 덜 보일 거예요.”
해설사의 설명이 무색하게 영양의 밤하늘은 멋지게 빛났다. 특히 밤새 켜진 가로등과 번화가 전광판에 하늘을 빼앗긴 도시 사람의 눈에는 그야말로 별천지가 따로 없다. 어른들은 잊었던 어린 시절의 하늘을, 아이들은 상상력으로 그려내던 동화 속 하늘을 만났다.
해설사의 별자리 강의는 관측 내내 계속된다. 별에 닿을 듯이 멀리 뻗어나가는 레이저 포인터로 별을 이으며 설명한다. 하늘이 칠판, 별이 판서인 셈이다. 북두칠성부터 사자자리, 금성, 목성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주관측실에는 천문대에서 가장 비싼 600㎜ 반사망원경이 자리한다. 돔이 자그마한 틈을 만들며 열리면 망원경의 접안렌즈에 뿌옇고 흐린 얼룩이 맺힌다. 성운이다.
별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동하니 공식 관측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도 공원 일대에서 밤하늘을 만끽하기를 권한다. 시시각각 별자리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빠른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인공위성도 심심찮게 보인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기상 상황과 달의 주기로 인해 은하수 관측은 불가했지만, 본래 은하수 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5, 6월은 한반도에서 은하수 중심부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시기다. 자정 전후로 제대로 관측할 수 있어 공원 숙소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천문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공원에 반딧불이도 서식한다. 6월에 애반딧불이(luciola lateralis), 8월엔 늦반딧불이(pyrocoelia rufa)가 공원 내부 반딧불이생태숲과 반딧불이생태공원에서 출몰한다. 국내에 몇 남지 않은 반딧불이 집단 서식지다.
■ 남이장군의 칼자국, 은둔선비의 연못
영양버스터미널로부터 남쪽으로 7㎞ 떨어진 입암면에는 선바위가 모두를 내려다보듯이 높게 솟아 있다. 반변천과 동천(청기천)이 남이포로 합류하는 지점이다. 선바위 건너편 절벽은 천지를 가르듯 날카롭다. 위아래 봄철 푸른 수목으로 뒤덮여 있어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절벽의 끄트머리에는 남이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주위의 절경을 홀로 감상하고 있다.
선바위는 남이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조선 세조대에 ‘용의 아들’을 자칭한 아룡과 자룡 형제가 역모를 꾀해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의 명을 받고 난을 진압한 남이장군은 훗날 이적 무리가 다시 일어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산맥을 잘라 물길을 돌렸다고 한다. 잘리고 남은 산맥의 일부가 선바위라고 한다. 혹자는 건너편 뾰족한 절벽이 남이장군이 휘두른 도(刀)의 칼자국이고, 장군이 가른 것은 산맥이 아닌 강이었다고도 한다.
본래 절벽 둘레길을 따라 남이정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길이 막혀 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절벽에서 인공 경관폭포가 흐른다. 인근에 조성된 분재야생화테마파크는 분재와 수석 등이 전시된 대형 온실로, 입장료가 없어 가볍게 둘러봄직하다.
남이정에서 불과 1㎞ 거리에 서석지(국가민속문화재)가 있다. 서석지는 전남 담양군 소쇄원,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원과 함께 ‘3대 전통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세상의 혼탁함을 등지고 낙향한 석문(石門) 정영방이 조성한 안식처다. 정영방은 1605년(선조38) 진사시에 합격해 입신양명할 자질이 충분하였으나 조정의 실정과 당파싸움에 회의감을 느껴 벼슬을 마다했다. 성균관 대신 영양의 깊은 산골짜기로 향한 정영방은 1613년(광해군5) 서석지를 조성했다.
연못을 중심으로 남쪽에 정문, 북쪽에 주일재(主一齋·서재), 서쪽에 경정(敬亭·정자) 등이 있고 동남쪽 모서리에 400여 년 수령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식재돼 있다. 서석지는 ‘기묘한 돌무리가 있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사각형 연못에는 실로 기묘한 암석이 여러 개 있다. 이는 인위적으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고 본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라 한다. 이 중 크기가 큰 19개는 선인(선유석·僊遊石) 구름(祥雲石·상운석), 물고기(漁狀石·어상석) 등 닮은 형상이나 시상에서 이름을 따와 지었다.
정영방이 그랬을 것처럼 경정에 올라 서석지를 지그시 바라보면 정말이지 세상의 번잡스러움이 흩어지는 듯하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산속에서 들리는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면 이미 경정에 둥지를 튼 일가족이 여럿이다. 배설물이 문화재에 닿지 않도록 둥지 밑에 막이를 받쳐놓고 함께 살도록 배려한 점이 미소 짓게 한다.
여름이면 서석지 수면이 단아한 연꽃으로 물드는데, 서석지의 연꽃에서 이름을 따 마을을 연당마을이라 불렀다. 정영방의 후손들이 마을에 꾸준히 기거해 동래 정씨 집성촌이 됐다. 마을에 오래된 한옥과 담장이 즐비하지만 태화당(太華堂) 고택(경북문화유산자료)이 상징적이다. 정영방의 9대손 동파(東坡) 정익세가 19세기 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대문채, 사랑마당, 살림채, 고방채(창고·광)을 갖춘 양반집이다.
‘ㅁ’자 형 살림채는 가로 6칸, 세로 5칸 반 규모로 앞면이 양옆으로 한 칸씩 튀어나온 양 날개 형태다. 현재 사랑채 보수 공사 중이라 오는 7월부터 다시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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